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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폭염 속에서 우리는 야채쌈을 만들어 먹었다` / 이화영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4년 07월 16일
폭염 속에서 우리는 야채쌈을 만들어 먹었다


이화영




  목백일홍이 수다를 떤다면 꽃잎이 많은 한여름일 것이다.
우리는 거실 그림자에 눈을 주며 당근 피망 오이 게살 숙주 아보카도를 손질했다
일손을 맞추려고 서로를 곁눈질하며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다
타원형의 초록색 과일을 반으로 자른 후 씨에 칼을 박아 제거하는 그녀의 손이 웃고 있다 가끔 칼질을 하면서 누군가를 겨냥하며 욕을 뱉어낼 때 폭염도 끌끌끌 여우 웃음소리를 내는 듯했다 여우 웃음소리는 사람을 홀린다지 나이 든 여자나 젊은 여자나 낮은 소리로 끌끌끌 웃을 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녀가 하는 욕은 과즙처럼 입안에서 팡팡 터졌다. 가끔 그녀의 욕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그녀는 말수가 적고 움직임은 동물적이다 직각 쟁반에 주황 노랑 초록 하양 야채가 정갈하게 놓여있다 그녀가 만들어준 아침 쥬스가 아직 위에 머물러 있다. 커피를 내려주고 가까운 마켙에 다녀온 그녀가 물소리를 내기 시작한 하루다 그녀의 집 현관 앞에 오래된 목백일홍이 있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간지럼을 잊지 않았다 목백일홍 매끈한 잔근육이 부르르 떨었다 얘 봐라 허리 비트는 거 좀 봐 끌끌끌 수천의 꽃송이가 휘파람을 보내온다 긴 여름 막막한 모서리에서 그녀는 움츠리며 울었다 소리없이 울었다 라이스페이퍼를 뜨거운 물에 담가 흰 접시에 펼쳐 놓고 야채쌈을 돌돌 말면서 이렇게 이뻤음 좋겠어 감히 손대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말했다 이렇게 맛났으면 좋겠어 감히 손대지 못할 정도로, 한여름 목백일홍 서사를 그녀는 야무지게 말아 쌈 싸 먹었다




▶멀리 바다 건너 그녀에게 갔다. 아침에 일어나 창 앞에 서면 키 큰 목백일홍이 애살스러운 웃음을 보내오고, 길 건너에는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중학교 때 그녀를 만났다. 이마가 예뻐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그녀는 작은 체구에 정신만큼은 대륙의 기질을 지닌 강인한 여성이다. 아침에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여는 그녀의 옆모습은 깊었다. 그녀의 삶은 신산했지만 표정은 풍부했고 행동은 우아하며 베픎에 있어 아낌이 없었다. 곧잘 무너지는 나는 바름을 몸에 장착한 그녀를 보며 다시 일어나고는 하였다.




ⓒ GBN 경북방송




▶약력
   2009년 《정신과표현》 신인상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시집 『침향』『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4년 0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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