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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박수현
검은 예장禮裝을 한 수도승 같았다 두 기의 무덤* 사이 검은 풍금 한 대 누가 이 후미진 곳까지 옮겨 놓았을까 여기저기 무너지고 뜯긴 건반들이 어찌 보면 폐가의 처마 같기도 했다 저녁 무렵이면 느릿느릿 풍금 페달을 밟는 소리가 들린다 두 옥타브 반짜리 바람상자에서 새는 차라리 오래된 우물 속 같은 새소리의 높고 낮은 음계들 아무도 찾지 않는 연세대 언더우드관 근처 어느 손이 두 젊은 무덤을 달래러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아름다운 새장 하나 달아주고 싶었나보다
* 연세대 언드우드관 옆 언덕에는 연희전문 출신인 젊은 독립운동가의 무덤 두 기가 있다.
▶몇 년 전 연세대 언더우드관 쪽 언덕길을 걸었다. 갈참나무 숲, 사이로 3기의 무덤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2기의 무덤 사이 마치 검은 예장禮裝을 한 수도승 같은 풍금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연희전문 출신인 두 젊은 독립운동가 무덤이었다. 젊은 애국지사의 무덤은 초라했고 기울어진 풍금은 한갓 잡목 한 그루에 진배없었다. 누가, 왜, 저 풍금을 언덕까지 옮겨 놓았을까? 바람 때문인지 웅웅대는 소리가 풍금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 중 하나가 저녁 무렵이면 걸어 나와 풍금을 연주하는 환상에 잠시 젖어 들었다. 종종걸음 치던 새 몇 마리가 나뭇가지 위로 날아올랐다. 붐비는 새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덤 근처에서 자꾸 발을 헛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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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3년 계간시지《시안》으로 등단 2011년 서울문화재단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기금 2025년 서울문화재단 원로 예술인
시집『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샌드페인팅』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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