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BUG
김유섭
모조 태양이 떠오른다. 무한 하루가 시작된다. 플라스틱 가로수 이파리가 흔들린다. 작동방식이 같다고 조잘거리는 것이다.
툭툭, 두어 개 프로그램 회로 따라 떨어지기도 한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자동차 타이어에 깔려 성공적으로 부서진다.
남자는 신발 끈을 단단하게 묶는다. 스테인리스 빌딩에 복제된 태양 빛이 반사된다. 전쟁하기 좋은 도심 거리. 개 한 마리 어슬렁거리면서 시간에 맞춰 어두운 뒷골목으로 사라진다.
살려두면 안 되는 것이 적이다. 순간마다 랜덤의 전율로 적은 달라진다. 끝나지 않을 라운드를 알리는 옛 시대의 망상, 악당들이 몰려온다.
새로 산 무기를 즐겁게 집어 든다. 가로수 왼쪽 가지에서 오른쪽 가지로 비둘기가 날아간다. 자꾸 날아간다. 버그다.
▶21세기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창궐한 신자본주의는 인간의 삶을 메타버스와 현실의 경계를 허문 세계로 밀어 넣고 낄낄거리려고 한다. 21세기 인간은 과연 현실과 가상 어디에 발 디디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21세기 인간인 당신은 가상인가? 아닌가? 나는 이 시로 묻는다. 21세기 인간이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버그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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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1년 『서정시학』 시 부문 신인상 2014년 『수필미학』 평론 부문 신인상 시집 『찬란한 봄날』 『지구의 살점이 보이는 거리』 『비보이』 평론서 『이상 오감도 해석』 『한국 현대시 해석』 시흥문학상. 아르코창작기금. 김만중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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