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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최동은
노란 말 앞에 하얀 말 앞에 파란 말 앞에 동물원 안에 여름 안에 북극곰 안에 철망 울타리 안에 아이들
아이스크림 고깔 모양 아이스크림 잠깐 맡겨 놓은 아이스크림 한 바퀴 두 바퀴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 천천히 핥아먹는 아이스크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홉 바퀴 열 바퀴 사라지는 아이스크림
들고 있던 언니는 어디로 갔나 흘러내린 자국은 어디로 갔나 달콤하고 부드러운 손은 어디로 갔나
약속은 녹아내리고 약속은 흔적이 없고 약속은 하얀색이고 약속은 바닐라 맛이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처음부터 없었던 맛이고
서서 잠자는 말 하얀 말 나를 태우고 달리던 말 검은 말 깜빡깜빡 졸면서 달리는 말 늙은 말
붉은 지붕이 사라진다 자개장롱 분꽃 마당이 사라진다 결혼을 한 언니는 꼭 닮은 아이를 낳고 엄마는 어느 생의 요양원으로 가고
그러면 여름은 겨울이 되고 다시 눈꽃나무 가지마다 아이스크림이 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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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내가 앉았다 일어난 공원 벤치 위에 또 다른 누군가가 앉아있고 배롱나무 가지에서 날아가는 새가 있고, 날아와 앉는 새도 있다.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리는 일이나 엄마가 어느 생의 요양원으로 가는 일은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다.
잠깐 피었다 지는 채송화는 채송화의 시간을 산 것이고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는 물고기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우리가 누군가에게 맡겨놓은 시간이란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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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2년 계간지 <시안> 으로 등단.
시집 『술래』 『한 사흘은 수천 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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