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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초
최예지
비금도의 한겨울 여러 발걸음 가득한 흙밭 푸르뎅뎅한 바다도 아니건만 게르마늄 토양 위로 푸르게 채워 멀리 떠난 자식들도 선뜻 돌아오지 못하는 먼바다 펼 수조차 없는 관절에 닿는 듯 아리도록 파고드는 갯바람
수화기 너머 볼멘소리였건만 하루 종일 쭈그려 앉아 할매들이 피워낸 자랑꽃 몇 해 지난 하누넘이 기념사진 손때 묻은 얼룩을 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해풍에 다 털리지 못한 이야기를 담아 조그맣게 불러보는 귀하던 이름 석 자
바람에 굽고, 소금기 스민 땅에 눕혀도 파랗게 흙을 뚫고 자라는 강인한 뿌리를 캤다 까맣게 잊어버린 푸르던 시절은 늘 못해준 죄책감 값 남은 손끝의 흙과 바람만이 그 시간을 기억한다
매일 스치고 흩어지는 바람 사이 끊임없이 도는 명사십리 해변의 풍차 보일 듯 말 듯 멀건 동공 먼지처럼 흩어질 것 같은 그림자만 다다르지 못한 발걸음처럼 어른거릴 뿐,
*섬초: 시금치의 한 종류로, 전남 신안군 비금도 등 섬 지역에서 해풍과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시금치를 ‘섬초(섬에서 자란 시금치)’라 부른다.
▶비금도의 겨울은 예상보다 깊고 거칠었다. 밭고랑 사이를 파고드는 갯바람 속에서도 할매들은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 섬초를 매만지고 있었다. 손등에 새겨진 세월의 굴곡과 흙냄새가 이 시의 첫 장면을 열어주었다. 섬은 멀리 떠난 이들을 붙잡은 채, 선뜻 돌아오지 못하는 마음들까지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해풍에 다 털리지 못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고, 할매들이 조그맣게 불러주던 옛 이름들은 바람 속에서 작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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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21년 <포엠포엠>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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