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백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다 텅 빈 복도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다 방으로 들어가 정해진 역할을 입기 전 나의 일부를 벗어두는 곳 복도엔 서둘러 가는 시간의 나사를 조금 풀어주는 느슨함이 있다 방과 방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거나 순간 벽 속으로 숨어들고 싶은 나를 받아주기도 한다
발걸음이 뜸한 한낮엔 미처 방으로 끼어들지 못한 쓸쓸함이 복도 한쪽에서 홀로 깊어진다 방문 앞에서 돌아보면 눈앞에 무한히 퍼져가는 파동 이윽고 복도는 서늘한 공기가 깊이 채워진 은밀한 수조가 되고 알에서 깨어난 치어들이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 간다 복도는 계속된다 복도의 끝에서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서는 내 발길 이 먼곳을 향하고 있다 내 꿈이 복도를 서성이는 동안 창밖 여윈 라일락 나무의 봉우리가 환해지고 가늘게 가늘게 벼린 시간들을 보랏빛 으로 꽃피우는 복도의 마음이 있다
▶한때 복도가 있고, 남향의 뜰이 있는 집에서 산 적이 있다. 외출에서 돌아 오면 서늘하고 고요한 공기가 채워진 공간이 나를 맞아주었고, 그 공기를 깊이 숨 쉬며 나는 방이 아닌 복도에서 잠시 휴식할 수 있었다. 라일락이 피는 봄날 복도를 서성이며 내가 기다린 것은 어떤 미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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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87년 《심상》으로 등단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서정시학상 수상
시집 『세상의 쓸쓸함들을 불러모아』 『어제의 나는 내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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