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얼굴
박숲
극장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고 피부에서 붉은빛이 번져 내 얼굴을 덧칠하며 따라붙어요
오늘은 누구의 것을 빌릴까?
어디선가 속삭임이 들리고 옆자리에 앉은 이들의 손짓은 내 표정을 연출하죠
얼굴을 도려내어 그들의 손에 건네줍니다
낯설어질수록 즐거워지죠
사람들이 웃을 때 튀어나오는 내 그림자가 더 진짜 같잖아요
불빛이 반사된 잔 사이로 얼굴 없는 얼굴이 앉아 있어요 숨을 고르며 한 조각 웃음을 떼어 와인잔에 담습니다
시선을 거두는 순간 얼굴들이 조각조각 흩어집니다 박수 소리는 다른 곳을 향하고 내 입술은 대사를 잃고 말지요
무대 위에 앉아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빛으로 빚은 그림자, 타인의 눈으로 조각된 내 모습이죠
지금 웃고 있는 건 나일까요, 나를 바라보는 당신일까요?
▶거울 속 얼굴이 나를 흉내 내고 있었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낯선 얼굴로. 수많은 타자의 시선이 빚어낸 얼굴들 사이에서 어느 순간 꼴라쥬처럼 겹쳐진 얼굴이 떠올랐고, 그것은 나의 얼굴인 것처럼 굳어 있었다. 웃는 법과 침묵하는 방식을 터득한 얼굴들 사이에서 나는 문득, 진짜 내 얼굴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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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21년 《전남매일신문》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2023년 《현대경제신문》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 2023년 《시와산문》시 당선. 소설집 『굿바이, 라 메탈』, 장편소설 『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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