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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24층에 살아
이만영
나 안개랑 친해 뽀얀 구름밭에 파묻혀 살지
모닝커피에 햇살 몇 방울 떨어뜨리면 질 낮은 아침 시간은 가라앉고 등짝 넓은 오후가 환하게 펼쳐지지
높은 창 커튼을 열면 지붕의 콧잔등부터 막다른 행성의 뒤통수까지 엉뚱한 곳만 가리키는 내비게이터
폭설에도 까딱 않던 근육질의 황소바람이 펄럭펄럭 귀를 스쳐 그 바람에 바쁜 출근 코앞에서 전철을 놓쳤어
휠체어에 날개 달고 날다가 캐리어처럼 전전긍긍 바닥에 나뒹구는 하루가 깨어질까
첨 보는 민낯 맨 몸뚱이 고라니 구름에겐 냉정하게 굴어야지 남서풍 기다리며 꽃 피울 때를 조바심하는 베란다 솜사탕 꽃이나 심어볼까
와인 잔에 안개 한 스푼 노을처럼 파도처럼 어둠이 몰려온다고
비명 질러도 될까 낯선 별 낯선 주소로부터 이민 오는 사람들 밀입국자가 늘어나는데 고층 건물에 익숙했던 쌍둥이네는 도대체 어느 별로 역 이주해 가버렸나
나 24층에 살아 구름에 휘감겨 달콤한 미래에 취한 척 스물네 계단 스물네 계절을 기꺼이 열어두지
오르내리며 슬픔의 맛을 알 것 같아
▶24층에 산 지 스무 해 남짓, 숫자 24는 이제 내 삶의 결처럼 익숙하다. 안개와 구름 사이, 현실과 환상이 겹치는 경계에서 나는 출근길의 지연과 베란다의 꿈을 오르내린다. 높이 오를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천천히 번져오는 슬픔의 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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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9년 제8회『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2018년 제39회『근로자문학제』은상 시집 『코끼리와 행신동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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