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사로 간 시인
류현주
답사객으로 보이는 45명을 태운 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46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방생을 서두르기 위해 머리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돌을 든 사람들 감은사가 있던 언저리를 가리키며 저기쯤이었어 부지런한 걸음을 재촉하며 언덕길을 오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46번째 방생자도 서두르는 법 없이 뒤처지지 않는 걸음으로 후미를 따라 오르고 있다 돌은 자기가 가지고 온 무게만큼 놓였다 반석 위로 석주를 세우고 제단을 쌓고 마음 크기대로 제물을 올려놓으니 순식간에 비탈진 언덕 위로 작은 절 하나가 세워졌다 증표가 필요해 숨을 고르고 있던 의심 많은 소설가가 입을 열었고 사진기를 들고 온 곱슬머리 사진작가가 흐트러진 빛을 끌어모아 사진을 찍는다 돌의 무게를 덜어 한결 가벼워진 사람들 앞에 서고 뒤로 빼고 발을 세우고 감은사가 흔들릴까 봐 눈을 깜빡이지 않으려 다시 한번 하나 두울 세엣 순간, 감은사가 사라졌다 누구 하나 감은사를 말하지 않았다 산머리에 붙어 있던 해가 놀라 기울어 갔다 잃어버린 감은사를 찾아내야 해 덩그러니 깨진 석탑만 남은 빈터 45명을 태운 버스가 서둘러 떠나갔다 46번째 방생자를 본 사람 아무도 없었다
▶스무 살이 지날 무렵 노스님은 나에게 화두를 내주셨다. 교류수불류(橋流水不流). 다리는 흐르나 물은 흐르지 않는다. 처음 받아본 화두를 집에 품고 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좀처럼 답이 떠오르지 않자 마을 외곽에 있는 다리를 직접 찾아 나서보기로 한다. 아무리 보아도 물은 쉼 없이 흘러갔고, 마을에 묶여진 다리는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물은 왜 흐르지 않는단 말인가.
감은사지 석탑을 보러간다고 했을 때 왜 감은사가 아니고 감은사지지 하는 의심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 걸 도착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빈 절터만 보였기 때문이다. 황량한 바람만이 그곳을 넘나들고 있었다. 문인 일행들과 그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선 이상하게 가슴 한켠이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한 시절의 부존재가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켰나 생각했지만 그도 잠시, 사라진 감은사로 들어가 보겠다는 집념이 강해지고 있었다. 다리 위의 어린 날처럼, 눈앞에 아스라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마는 감은사의 문을 열고 또 열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들 속에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진리가 놓여 있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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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24년 계간 《서정시학》 신인상
시집 『설탕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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