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깔링의 기도` / 박관서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07월 22일
깔링의 기도
박관서
하잘스런 일기를 몰아서 쓰느라 밤을 샌 새벽에 좌변기에 앉아, 추석 지난 가을이니 논물을 빼러가자는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찍어 넘기는 핸드폰으로 뼈가 내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의 넓적다리뼈로 만든 피리라는
깔링의 음률을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뼈만 남은 이들이 되지 않기 위해 뼈 빠지게 일을 하다
휘거나 닳아버린 관절이나 잘려나간 손가락 부위가 날이 궂으면 결리거나 가렵다는 이웃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뼈만 남기지 않을 이들이 있기나 한가 내가 죽거든 검붉은 불길로 몸 안에 채워 넣은 살과 물을 살라
남은 뼈가 있거든 슬슬 빻아 고향 강물에 뿌려지기를 되새기면서, 골을 내며 돌아올 아내를 위해
댓 줌의 쌀을 꼬들꼬들 씻어 뜨물로는 시래기 된장국을 끓이고 희고 맑고 또렷또렷해진 쌀알로는 밥을 안쳤다
압력 밥솥에서 금세 스르릉 스르릉 깔링의 음률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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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BN 경북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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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에는 깔링이라는 악기가 있다. 죽은 사람의 뼈 중에서 가장 강한 넓적다리뼈로 만든 나팔이라고 한다. 아내와 다툰 어느 아침엔가 깔링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들었다. 우리들은 인간의 몸을 통해서 내는 소리들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들의 일상이 그렇듯이, 그 안에서 울고 웃으며 때로는 명랑하게 때로는 비참한 기분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뼈라고 해서 별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촘촘한 일상에서 생겨나서 자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 일상의 밥이 지어지는 압력밥솥과 아내와 남편과 노래들이 그러하지 않겠는가. 깔링의 음률에 가만히 귀기울여보면 이른 새벽 맑은 이슬에 걸린 거미줄처럼 청량하고 맑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노래를 따라 흘러간다.
▶약력
1996년 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신인추천
제7회 윤상원문학상 수상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역임.
시집 『철도원 일기』, 『기차 아래 사랑법』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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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19년 07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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