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낡은 양말` / 한보경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10월 25일
낡은 양말
한보경
짙은 살 냄새를 베고 누웠다
남루해진 동서남북이 구겨진 장면을 풀어내린다
그윽한 것,
무심히 벼려놓은 의외의 시선 같은 것,
그늘진 변방의 무릎에 기대어 혼곤히 잠든,
허락된 한 쌍의 평화가 비로소 서로를 마주하고 누웠다
지나온 여정은 너무 길었고
구겨진 무례함은
가장 낮은 걸음이 얻어낸 쪽잠 같은 덤, 어쩌다 너무 흔한 꽃의 축사 같은 것
얼마나 남았을까
시든 풀잎처럼 숨 고를 수 있는 시간
헐렁해진 심장이 마지막 출정을 떠나는
지금은, 아득한 변방
가장 낮은 자세는 아직 옳다
▶버려진 듯 구석진 시간을 벼리고 있는, 낡은 양말 한 쌍. 발가락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헐렁해진 동서남북이 빠져나온다. 낡고 남루한 일상들이 꽉 조였던 숨을 비로소 후르르 내뱉는 짧은 순간이다. 가장 낮은 바닥을 걸어본 것들이 이루어 낸 평화는 짧지만 한없이 낮고 그윽하다. 함부로 서로를 베고 누워도 서로를 탓하지 않고 품어준다. 변방의 구석진 자리를 따라 지나온 시간과 공간의 한켠이 풀어지고 있다. 언젠가 아버지의 양말이 그랬고 지금 누군가의 양말이 그렇다. 단내 나는 고단함 속으로 가장 낮은 자세로 일군 모두의 저녁이 혼곤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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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9년 불교문예 등단
시집 「여기가 거기였을 때」 「덤,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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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19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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