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도배` / 김선미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1월 07일
도배
김선미
아이가 걸음을 뗀다
벽에서 벽까지의 거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리
아이는
벽지의 꽃을 좋아했고 무늬를 좋아했고
잡아 뜯으면 새로운 벽지가 나왔고 새로운 꽃무늬가 나왔다
먹으면 먼지 맛이 났고 꽃 맛도 났다
꽃잎의 개수나 무늬의 모양에 따라 그 집 사람들의 숫자나 인물이형성된다
난 저 아이의 엄마를 안다
오래된 집은 방이 점점 작아진다 겹겹이
덧대고 덧댄,
벽이 점점 앞으로 몰려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단막들
하나의 취향과 그 위의 취향과 이어지는 취향 그래서 오래된 집에
사는 사람들은 사이가 좀 더 가까워진다
누구를 안다는 건 벽지를 뜯는 것과 같다
나는 매대에 올려놓을 꽃무늬 리본을 골라 늘어놓으러 가는 중이다 취향들이 모여 드는 곳
머리를 하나로 묶은 아가씨가 오고 가죽 재킷을 입은 중년 아저씨도
오고 그들의 친구들도 동생도 할머니도 온다
배가 불룩한 어미도둑고양이도 슬금슬금 지나간다
꽃들이 만발하다
▶아기가 첫걸음을 뗄 때 얼마나 두려울까? 또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설레고 조마조마할까? 우리는 모두 그 순간을 잊고 사는 건 아닐까? 벽을 잡고 일어서고 벽을 잡고 옆걸음을 걷다가 비로소 양 팔을 허공에 짚고 한 걸음 걸을 때 그 환희와 감동의 시간을, 놓여나는 순간 우리는 순수에서 멀어지는 건 아닐까 벽에 그려진 무늬들과 그림들 그 위에 마구 그려지고 칠해진 낙서들 벽지를 바르고 또 그 위에 벽지를 바르고 계속 바르다 보면 방이 좁아질 때까지 바르면, 그 방에서 우리는 모두 다정해질까? 겹겹이 쌓인 벽지를 뜯어보면 그 집의 내력을 알게 된다. 취향과 재력과 집안의 분위기와 못의 개수까지 우리는 매일매일 도배를 하며 산다.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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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9년 『시에』 등단
시집 『마가린 공장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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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20년 01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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