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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컵` / 조경선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19일
컵 조경선
옆에 놓여 있는 컵이 하나여서 다행입니다 나도 그 감정이어서 다행입니다 둥글다는 것은 입술을 편하게 하고 일정하게 맛 들여진 곡선의 촉감들은 손끝으로 읽어 주고 싶어집니다 뜨거운 차를 수십 번 입에 댔다 떼는 사이 외풍이 옆자리를 떠올리다 스스로 식어지곤 해요 양손을 떠받힌 사기그릇이 처음부터 뜨겁지는 않아요 홀로 급하게 먹어 치우는 점심이 갈증을 불러와도 한 번에 들이키면 기억까지 데이고 말죠 매번 불투명한 속에 얼굴을 채워도 내 얼굴은 투명하게 보이지 않아요 살다보면 컵 속에 가라앉은 자들이 얼굴을 내밀지요 뜨겁고 차갑고 쓰고 달착지근한 입김들이 바닥에 엎드려 눌어붙어 있습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컵 밑은 이유 없는 생채기로 흔들렸어요 컵하고 발음하고 나면 상처도 저 혼자 아물 것 같아 매일 순한 밤 속에 정갈하게 엎어놓지요 그래서인지 문양이 새겨진 바깥쪽이 자꾸만 청승맞은 빛이 되어 나를 봅니다 컵 하나만 기다려줘서 다행입니다 외로움을 마시지 않습니다 고요를 마십니다
▶외딴 집의 표정은 어느 물건하나 바뀌어도 금방 읽힌다. 긴 겨울 한 벌의 움직임에도 마당은 민감하다. 발자국보다 소리가 먼저 들리는 까닭이다. 아침에 홀로 마시는 차 한 잔이 있어 다행이다. 양손으로 떠받치는 컵이 온유하다. 컵 속에 떠나간 입김들이 가라앉을 때마다 묻어둔 침묵을 꺼낸다. 손 밑에서 지워져간 달착지근한 조각들이 흐른다. 떠나는 것은 계절을 갈아입지 않고 떠나간다. 예고도 없다. 그래서 처절하다. 외딴집은 다시 외딴집이 되고 정갈한 오후를 맞는다. 하루를 쓸어 담은 적막 속에 컵 하나만 기다려줘서 다행이다. 외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고요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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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2년 포엠포엠 등단
2016 매일신문 시조 등단
천강문학상, 김만중 문학상 수상
시집『목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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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20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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