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4-04-24 오후 08:30:3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문화/여성 > 시로 여는 아침

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컵` / 조경선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19일

 
조경선  
 

옆에 놓여 있는 컵이 하나여서 다행입니다
나도 그 감정이어서 다행입니다
둥글다는 것은 입술을 편하게 하고
일정하게 맛 들여진 곡선의 촉감들은
손끝으로 읽어 주고 싶어집니다
뜨거운 차를 수십 번 입에 댔다 떼는 사이
외풍이 옆자리를 떠올리다 스스로 식어지곤 해요
양손을 떠받힌 사기그릇이 처음부터 뜨겁지는 않아요
홀로 급하게 먹어 치우는 점심이 갈증을 불러와도
한 번에 들이키면 기억까지 데이고 말죠
매번 불투명한 속에 얼굴을 채워도
내 얼굴은 투명하게 보이지 않아요
살다보면 컵 속에 가라앉은 자들이 얼굴을 내밀지요
뜨겁고 차갑고 쓰고 달착지근한 입김들이
바닥에 엎드려 눌어붙어 있습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컵 밑은
이유 없는 생채기로 흔들렸어요
컵하고 발음하고 나면 상처도 저 혼자 아물 것 같아
매일 순한 밤 속에 정갈하게 엎어놓지요
그래서인지 문양이 새겨진 바깥쪽이
자꾸만 청승맞은 빛이 되어 나를 봅니다
컵 하나만 기다려줘서 다행입니다
외로움을 마시지 않습니다 고요를 마십니다




▶외딴 집의 표정은 어느 물건하나 바뀌어도 금방 읽힌다. 긴 겨울 한 벌의 움직임에도 마당은 민감하다. 발자국보다 소리가 먼저 들리는 까닭이다.
아침에 홀로 마시는 차 한 잔이 있어 다행이다. 양손으로 떠받치는 컵이 온유하다. 컵 속에 떠나간 입김들이 가라앉을 때마다 묻어둔 침묵을 꺼낸다.
손 밑에서 지워져간 달착지근한 조각들이 흐른다. 떠나는 것은 계절을 갈아입지 않고 떠나간다. 예고도 없다. 그래서 처절하다. 외딴집은 다시 외딴집이 되고 정갈한 오후를 맞는다. 하루를 쓸어 담은 적막 속에 컵 하나만 기다려줘서 다행이다. 외로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고요를 마신다.





ⓒ GBN 경북방송




▶약력
  2012년 포엠포엠 등단
  2016 매일신문 시조 등단
  천강문학상, 김만중 문학상 수상
  시집『목력』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3월 19일
- Copyrights ⓒGBN 경북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Tags : 조경선 포엠포엠 매일신문 천강문학상 김만중문학상 김조민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메타세쿼이아 연두` / 정서희 시인..
무산중·고등학교 전교생, 박목월 생가 찾아 체험학습..
경주시맨발걷기협회 출범식 및 제1회 선덕여왕길 벚꽃맨발걷기 성료..
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정남진에서 / 황명강 시인..
경주시, 2024년 주민공동체 공모사업 비전 선포..
어린이 통학버스 안전은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문화유산 시리즈 5권 발간..
경북교육청, 몽골 총괄교육청과 R컴퓨터 나눔 협약식 가져..
경상북도의회, 2024년도 청소년의회교실 본격 시동..
하이엠케이(주) 구미 알루미늄 소재 공장 착공식 개최..
포토뉴스
시로 여는 아침
어정역 계단에 물고기가 누워 있다 숙취에 절은 움직임에 .. 
황명강 시 정남진에서.. 
메타세쿼이아 연두 .. 
최동호 교수의 정조대왕 시 읽기
정조는 1752년 임신년에 출생하여 영조 35년 1759년 기묘년 2월..
상호: GBN 경북방송 / 주소: 경북 포항시 북구 중흥로 139번길 44-3 / 대표이사: 진용숙 / 발행인 : 진용숙 / 편집인 : 황재임
mail: gbn.tv@daum.net / Tel: 054-273-3027 / Fax : 054-773-0457 / 등록번호 : 171211-0058501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1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진용숙
Copyright ⓒ GBN 경북방송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