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밤의 육체` / 김유자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4월 07일
밤의 육체
김유자
손을 넣고 휘휘 젓다가 발을 꺼낸다 두 발은 두리번거리다, 발목 위가 사라진 걸 안다 왼발은 숲으로 오른발은 바다로
귀를 꺼낸다 이것도 한 쌍이구나 열려있어서 지킬 것이 없구나 두 귀가 다가가 옆에 서자, 나비가 된다 날갯짓 할 때마다 고요에 파문이 일고
입을 꺼내자 윗입술은 떠오르고 아랫입술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구름인가 은하수인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윗입술은 우주를 떠가고 심해에 누워 가만히 지느러미를 흔드는 아랫입술 사이로 유성우가 흘러내린다 고여 있던 말들이 심해어의 눈처럼 흐려진다
무엇을 꺼내도 나로부터 달아나는 밤
빛은 흩어져있는 뼈와 심장과 귀들을 끌어당긴다 잠 깨면 바다와 사막과 행성 냄새가 난다 눈 발 가슴 한 쌍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손목과 손가락, 종아리와 발목, 입술과 혀는 붙어서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겨 있다
발바닥에 풀물이 든 채 모래가 묻은 채 걷다가 문득 발 둘은 돌아본다
▶밤은 세계를 자루 속에 집어넣었다. 검은 자루 속에서 나는 꺼낸다, 나의 육체를. 쌍을 이룬 것도 많다. 그런데 왜 그들은 마주 보지 않나. 한 육체에 붙어서 왜 하나의 생각으로 모여들지 않나. 그 모든 것이 ‘나’일 수도, 모든 것이 ‘나’이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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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문학사상 등단 2013년 시집 『고백하는 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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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20년 04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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