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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마음의 시루` / 유지현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4월 09일
마음의 시루

유지현


모래 바람이 해 그림자를 핥아대는 시간이다
양철 찌그러지는 소리로 신음하는 거리
어느 진창에 서서 허기를 채울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비어있던 시루 위로
동지의 밤처럼 내려앉은 먼지의 나날들
기억의 입술로 불러내니
팥 빛깔 노을로 번진다

불을 올리기 전 솥과 시루를
이어 붙이던 주름진 손가락
팥과 쌀가루가 엉키며 조용히 익는 냄새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으리라

아이들이 머리채를 흔들며
뛰어 간다 붉게 익는 지붕 아래로
채색 옷의 할머니가 아이를 안고 간다
아이를 안으려 깍지 낀 손
내 할머니 손과 닮았다
오래된 옷자락에 안긴 아이는
모래 시간에서 돌아가
떡시루같이 익는 저녁을 담을 것이다

기억의 이랑들
손때 낡은 시루 위에 출렁이고
훈김 저문 골목길 그득하게 고여
이 저녁 마음 고프지 않으리라.



▶그리움의 허기
   허기란 단지 위장이 느끼는 배고픔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가득 먹어도 허기를 느낀다. 정성없이 감미료로 맛을 낸 음식을 먹을 때 더욱 그러하다. 음식 재료의 고유한 향과 식감을 살린 정성들인 음식을 맛보기 어려워진 탓에, 먹어도 더욱 배고픈 역설이 서글프다. 
   첫 손녀였던 나를 귀여워하셨던 할머니는 가을이 되면 햇팥을 사서 팥시루떡을 해주시곤 했다. 어린 나는 세심하게 팥을 고르시는 할머니를 따라 다니며 시장 구경을 하곤 했다. 그리고 시루에 팥과 쌀을 켜켜이 담으시고 불을 올리기 전 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시루와 솥을 꼼꼼하게 이어 붙이던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기억한다. 쌀 한 톨을 소홀히 하지 않으시던 할머니는 명절이나 제사를 앞두고 늘
   떡을 찌거나 빚으시며 이웃과 친척들과 나누어 드셨다. 내 생일 무렵에는 늘 팥시루떡을 잊지 않으셨다. 아마 입이 짧고 몸이 약한 손녀를 위해 무언가 정성스레 먹이고 싶은 심정이 아니셨을까.
팥 고유의 단맛과 풍미가 구수하게 머금어 나오는 따뜻한 팥시루떡을 베어 물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 기억에 팥시루 떡을 찾지만 이제는 어디서도 그런 떡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허기를 채우는 것은 단순히 외향만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아니라 소박하고 볼품이 없을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 본다면 음식을 먹는다는 것, 말을 나누는 것 모두 진심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진심이 깃든 음식과도 같은 시를 그리며 <마음의 시루>를 구상하였다. 그 시루에 담긴 그리움이 텅 빈 위장을 감싸고 돈다.




ⓒ GBN 경북방송

 
 
 
▶약력
   199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2019년 서정시학 시부분 신인상
   서정시학회 동인
   현 국립한경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4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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