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네가 그리우면 나는 웃었다` / 강재남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6월 02일
네가 그리우면 나는 웃었다
강재남
목련이 피었다 지는 걸 보고 4월이구나 누군가 그 아래서 베르테르 편지를 읽겠구나 생각하였소 좀 더 아래로 나의 소녀가 지나는 것이 보였지만 소녀는 깔깔거리지 않았소 베르테르는 늙어버렸고 목련은 재미없이 떨어지기만 하였소 너무 큰 꽃송이는 쉽게 눈에 띄지만 누군가의 눈에 담기기엔 얼마나 큰 눈을 가져야만 할까 생각하였소 햇살이 창가로 떨어지고 있었소 창문을 열어 공중의 햇살들을 불러 모았소 네가 들어와 앉기엔 창틀이 낡았구나 창틀에 동그랗게 햇살방석을 만들었소 네가 없는 세상이 퍽이나 재미가 있어서 나는 매일을 깔깔대며 살았소 그러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유치원생 글자처럼 삐뚤삐뚤 걷기도 하였소 네가 없는 세상이 퍽이나 재미가 있어서 벚나무에서는 꽃잎이 눈물로 흩날리고 진달래가 예고 없이 붉기만 하였소 그럴 때는 내 심장에서도 붉은 꽃이 피었소 목련은 가지마다 모가지를 늘이고 꽃상여에 올랐소 중천으로 가면 네가 없는 세상이 퍽이나 재미가 있었다 말해줄 모양이오 네가 없는 세상이 퍽이나 재미가 있어서 나무에 뺨을 대보기도 하오 그곳에서 네 심장소리 들리는 듯하여 다시 뺨을 대었소 나뭇잎 수런거리는 소리만 들리오 나무는 참으로 변덕쟁이란 걸 진즉에 알았었소 길을 걷다가 네 닮은 사람을 보았소 네가 없는 세상이 퍽이나 재미가 있어서 무심히 지나쳤소 늙은 베르테르가 노래도 없는 4월을 건너고 있었소
▶기척 없이 목련이 다녀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졌습니다. 거리마다 벚꽃이 꽃눈으로 흩날리는 지금은 온통 좋은 계절이라 말하고 싶은 봄입니다. 좀 더 깊은 봄으로 가기 위해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피고 지고 흩어지는 걸까요. 봄이어서 만물이 소생하고 봄이어서 또한 잃어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른 나이에 나는 친구를 잃었고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언니는 거미처럼 말라갑니다. 봄이어서 나무마다 물이 오르는데 그것과는 무관하게 물기가 빠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아프게 배우는 중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거나 당신들이 그립다 말합니다. 세상 어떤 이별이 아프지 않은 것이 있을까요. 그리하여 이별이 완성되는 순간이 있기는 하는 걸까요. 혼자 묻고 답하면서 친애하는 당신들에게 무소식을 전합니다.
|
|
|
ⓒ GBN 경북방송 |
|
▶약력
2010년 《시문학》 등단
2017년 한국문화예술유망작가창작지원금 수혜
제6회 한국동서문학작품상 수상
시집 『이상하고 아름다운』
현, 통영청소년문학아카데미 주임강사.
강재남의 포엠산책 연재(경남일보)
|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02일
- Copyrights ⓒGBN 경북방송.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포토뉴스
어정역 계단에 물고기가 누워 있다 숙취에 절은 움직임에
..
|
최동호 교수의 정조대왕 시 읽기
정조는 1752년 임신년에 출생하여 영조 35년 1759년 기묘년 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