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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비폭력 대화` / 한정연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30일
비폭력 대화
한정연
식도가 길어 음식이 소화될 때까지 생각이 많은 기린에게는 먼저 말을 걸기가 거북스럽다 자기만의 성대로 울음소리를 발명하니 알아듣기도 어렵다 당신이 참을성 없이 쏟아낸 말을 부드럽게 주워 담는 긴 혀와 우물거리는 입술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 상대의 타액이 섞인 무자비한 말조차 시간과 함께 꼭꼭 씹을 줄 안다 기린에게도 뿔은 있다 그러나 결투를 포기한 뿔은 제 피부를 뚫고 나올 정도의 분노나 증오 같은 격렬함이 없다 그 끝은 이제 둥글고 둥글어져 고요한 우주를 닮아가는 중이다 콧등으로 미모사를 건드리면서 요리조리 아카시아 새싹을 살피면서 초식동물에 어울리는 순한 생각을 수십 번씩 접었다 펼쳐 보는 것이다 기린은 지그시 어금니에 힘을 준다 혀를 구부려 입 속 공기의 흐름을 막는 것은 말이 만드는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날 선 말이 방심한 제 앞다리를 낫처럼 썩뚝 잘라낼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 순간 불같은 성정의 자칼은 컹컹거리며 바오밥나무 둥치를 수십 바퀴째 돌고 있다 몸이 가볍고 다리 근육이 강하여 바람처럼 움직이는 이 짐승은 자신의 꼬리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일까 무모한 회전을 멈출 것 같지 않다
▶우리는 만났다. 우리의 대화는 끊길 듯 이어진다. 너는 방금 전 내가 내뱉은 치욕을 핥으며 와인감별사 같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구나. 이제는 긴 목뼈를 우아하게 틀어 창밖 가장 먼 곳의 풍경부터 바라보리라. 석양의 부드러운 빛이 너의 목구멍을 간지럽힐지라도 너는 너의 특기인 시간을 작동시킬 것이다.
우리는 만났고 몸을 사리는 대화의 끝처럼 소리 없이 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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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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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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