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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후박나무의 푸른 허리쯤 숨어 건너다보는 일처럼` / 진란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19일
후박나무의 푸른 허리쯤 숨어 건너다보는 일처럼
 
진 란
 
 
허공을 북북 그어대면서 비가 왔다
귀를 나무에 대고 왼쪽 귀는 바깥의 숨을 더듬었다
후끈한 수피와 그 바깥을 가르는 차가운 소리
세상의 지붕처럼 뒤덮고 있는 잎사귀가 소란해지다가
내 가슴께에서 종소리처럼 출렁거렸다
불현듯 울음이 차올라, 저 빗길을 흘러가
남해 어느 바닷가에 닿아 공룡처럼 발자국 찍어놓고
심해 깊이 잠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유쾌해진다
물고기들에게 먹히는 살들이 팔랑거릴 것이다
문득 사라지고 없는 나를, 그래 나를
한바탕 떠들썩하게 찾는 소리가 명랑하다
유서는 써야할까? 비밀스럽게 그냥 잠적해 버릴까?
짜르르 왼쪽 심장에 경고음이 울렸다
빗소리에 방전된 비명들이 날아올랐다
시나브로 푸른 그늘을 지우고 세상의 모든 구멍을 채우려는 듯
어설픈 지도를 만들면서 장맛비는 쏟아지고
점점 기울어지는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헐렁해졌는지 싶게
기울어지는 구름의 중심에서 번쩍 섬광이 일었다
후박나무 넓은 잎을 조롱하는 듯 빗방울이 성기어지고
그 초록의 넓이에 미끄러지는 물방울들이 햇살에 쨍하다
태양전열 판이 되어버리는 아스팔트에 훅훅 숨이 찼다
비릿한 비 냄새를 털면서 푸른 잎사귀들이 깃을 세웠다
바다에서 막 돌아온 초록물고기들이 가오리연처럼 생생하게 흔들렸다
내 가슴에 북북 그려진 먼 얼굴도 잎사귀를 털고 뛰어내렸다
세상 어느 구멍에 숨었다가 물 떼를 만났던,
퉁퉁 불었던 먼 그리움 몇 마리 햇볕에 자지러졌다
후박나무 허리쯤에 숨어 사소한 죽음을 보았다




▶요즘처럼 지루하고 길게 장마가 계속되는 날에는 어느 여름이 떠오른다. 광화문 어디쯤 걸어가다가 갑작스럽게 만났던 소낙비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퍼붓던 날이다. 창 넓은 카페 창가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저 빗물을 타고 떠내려가면 바다까지 갈 수 있을까 상상하다가 내가 어느 날 사라지는 생각, 그러면 주변 사람들은 내 생각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언제 폭우가 쏟아졌냐는 듯 말짱해져서 폭염이 쨍쨍하던 그 하루였다. 지렁이들도 물이 찬 땅 속에서 기어 나와 폭염에 자지러지고 있는 풍경, 세상은 문득 뜻밖의 상상을 만나기도 하고, 심각해지기도 하는 생生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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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2년 계간《주변인과 詩》로 작품 활동
   시집 『혼자 노는 숲』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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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진란 주변인과시 후박나무 시나브로 김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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