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폭설` / 김려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03일
폭설
김려
노인은 앉은뱅이 아내를 업고 밭으로 갔다 텃밭 한쪽 꽃방석 위에 아내를 앉혀 놓고 봄날을 골랐다
햇살의 흰 머리카락 수정 브로치를 단 민들레 곁에서 반짝거렸다
풀 한 번 뽑고 아내 한 번 쳐다보고 풀 한 번 뽑고 아내 한 번 쳐다보고
잇몸만 남은 한낮 다소곳 늙은 아내가 전하는 말
올해도 영감이 좋아하는 눈을 볼 수 있을까요 아무렴, 내년에도 볼 수 있지
감나무 그늘 노부부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텃밭의 노부부가 앞당겨 본 겨울
눈부신 봄날이 꽃잎인 듯 흩어져 내렸다
▶우리 감밭으로 가는 길목에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나무밭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어찌나 열심히 일하시는지, 그 밭에는 풀 한 포기 없었다. 할머니는 수레에 앉아 있거나, 밭 한 모퉁이 두툼한 방석 위에 앉아 할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중간마다 아픈 할머니를 다정하게 챙겨주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감나무들도 행복에 겨워 커다랗고 탐스러운 대봉을 매달곤 했다. 벚꽃이 폭설처럼 지던 어느 봄날 이후 두 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감밭도 곧 어수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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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6년 《사이펀》 등단
시집 『어떤 것은 밑이 희고 어떤 것은 밑이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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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20년 09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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