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열애` / 이향란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1년 01월 19일
열애
이향란
물과 쌀이 든 밥통을 압력밥솥에 넣고 스위치를 꽂는다. 전원이라는 스,파,크가 요동치며 혈관을 돌 때 밥솥은 더 이상 밥솥이 아니다.
물과 쌀의 고즈넉한 만남
쌀의 점력(粘力)과 물의 속성이 서서히 엉겨 붙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소용돌이친다. 뜨거움의 한계, 그것은 쌀과 물의 한계이기도 할 테지만 일단은 끓어오르고 본다. 그래봤자 넘치기 밖에 더할까
다툼과 갈등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화해는 또 어떻게 했는지, 아니면 그런 거 없이 그저 마냥 좋았을 뿐인지, 나는 모른다. 어떻게든 익어 가리라, 익게 되리라, 익었으리라. 수수방관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 곁불을 쬐며 나도 덩달아 달아오르면서
들끓던 시간이 노래처럼 바람처럼 흘러가고 열기가 증기처럼 후욱 빠져나간 이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뚜껑을 화악! 열어젖히면 쌀과 물의 미친 듯한 한때는 서로의 압력으로 기진맥진하고,
푹 퍼져버린 시간의 냄새는 구수하게 허기를 움켜쥔다.
추억에게 먹혀도 좋을 성숙한 이름의 완성 밥이라는 혹은 사랑이라는
▶아아, 무엇을 해야 희미하고 막막하고 괜한 서러움마저 잊을 수 있을까. 가뜩이나 날은 춥고 사람의 입김과 손길은 그리운데 팬데믹으로 세상은 갇혀있다. 비말이 무서운 줄 모른 채 마주앉아 밤새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싶다. 스위치는 켜져 있다. 뜨겁게 끓어오를 준비가 돼있다. 창 안의 사람과 창밖의 사람 모두를 미친 듯이 사랑하고 싶다. 서로의 뚜껑을 화악 열어놓은 채 웃어젖히고 싶다. 기진맥진할 때까지 냄새 폴폴 풍기는 이 시대의 사람을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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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2년 첫 시집 <안개詩>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슬픔의 속도』 『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 『너라는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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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21년 0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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