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밀면서 오래달리기
권이화
태양이 사라진 후에도 달리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먼 곳에서 꽃이 오듯 오래된 약속 같은 오래오래 달리는 것
나를 따라오세요, 꽃구름 만발한 부름 스스로 찬란하여 아직 힘을 주는 달리기 백 년을 갈 테니 아름다움 주세요
미처 따르지 못해 한나절 흙길 걸어간 여름조차 둥글게 당신 감싸는 좋은 저녁이 목구멍을 올라온다 나를 따라오세요, 지금 어둠을 여시는 이 빛으로 한 올 한 올 촘촘히 엮어 천년을 달려갈 테니 새를 주세요
마치 당신이 바다에서 숲에서 뭍으로 평야로 달려와 찬란한 발이나 손으로 빛을 다해 한 생애 몰아가듯
마치 새 같이 저기 기쁜 마음으로 둥글게 날아오르는 어둠 별이 별을 몰아가는 당신을 따라 둥글게 달린다
멀리 날아가는 새처럼 달리는 일이 아름다움이 될 때
▶저물녘이면 자주 천변을 산책한다. 일과를 마무리하듯 조용히 걷고 있는 길로 어둠이 짙어지면 어느새 생을 달리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둠을 밀며 저렇게 달리는 좋은 저녁의 저편엔 무엇이 있을까? 밤이 지나고 태양이 사라진 후에도 한 생애를 몰아 끝까지 달려가면 그곳에서 꽃을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사물도 사람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달리는 저녁 산책은 어느새 시 안으로 들어와 생이 뭉클해진다. 우리는 모두 오래전 누군가와 약속했으리라. 오래오래 기쁜 마음으로 별을 몰고 달리는 것이라고. 천 년을 가도록 둥글게 달리는 거라고. 새들이 노래하며 날아가고 있다. 나의 시인과 시가 새처럼 오래오래 날기를 바라며 온몸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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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4년 <미네르바> 로 등단
동서문학상, 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시집 『어둠을 밀면서 오래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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