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수진
틈으로 피가 빠지고 있다
이제 와서야 더 놀고 싶어, 얼음!
사람인지 귀신인지 겨우 손끝에 보이는 등을 쫓아 땡! 하고 깨우고 엄마, 아직 밥 먹으라 부르지 말아 한 명만 더 한 번만 더
하루살이 떼 노란 셔츠에 달라붙는다 휘휘 저을수록 계속 달려드는 건 틈을 주지 않고 앵앵거리는 건
누구니? 이 공터로 나를 부른 건
어둠은 수군거리며 떼 지어 몰려든다. 돌아보면 언제나 내 편은 없었다 이름도 모르고 종일 논 아이들이 모두 잡아먹히고 나면 서둘러 쓰여지는 결말, 또는 귀가
흰 뼈로 사라지는 것인지 검은 그림자로 지워지는 것인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희미한 빛 아래 철봉 밑을 뒤지면 가끔 주인 없는 이름들이 하나, 둘 나왔고
반짝이는 것들을 골라 하나하나 몰래 주머니에 넣으며 밤은 혼자 자랐다.
▶아이는 낯선 곳에 가면 구석부터 찾았다. 구석에 숨어 일단, 보았다. 분주한 사람들을, 그들이 이마에 드리고 다니는 슬픔의 커튼을, 그들 사이에 놓여있는 낭떠러지를. 다 보기 전까지는, 다 이해할 수 있기 전까지는 구석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루의 빛이 어두운 수챗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시간. 사람과 귀신, 아이와 어른, 빛과 어두움 사이에 숨어서 입을 벌리고 있는 저 거대한 짐승.
막이 하나 내리고 다시 열리는 찰나에 바쁘게 무대를 바꾸는 검은 손들이 있었다. 번뜩, 눈이 마주쳤다. 그때 나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다 알 것만 같은 무언가를 보았고, 그제야 구석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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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22년 계간 시와 반시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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