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속으로 들어간 향기 2
지하선
난蘭 화분을 옮기려다 뚝, 부러진 꽃대 바닥으로 떨어지는 새파란 비명을 얼결에 주워 물 컵에 담가 놓았다
이틀쯤 지났을까 무덤 속 어둠을 바늘 삼키듯 들이키면서도 희미해지는 기억 더듬으며 몰래 봉인 되었던 비밀 안간힘으로 열고 있었나보다 죽었으면서도 죽을 수 없는 죽음이 신비스럽게도 노란향기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절체절명 그 끝에서 먼 먼 추억 속 그리운 묵향이 흘러내린다
절제의 미美사이사이 여백에서 난의 향기 보여야 한다 던 아버지의 음성 진하게 배인 묵향, 문갑서랍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몇 십 년 착착 접혔던 난 몇 그루 아버지의 손끝에서 다시 검푸르게 피어난다 싱싱하게 치솟는 우발란, 부드럽게 꺾이는 좌발란 세월이 드문드문 벌려놓은 노르께한 여백도 아버지의 환생한 체취로 은근하고 따스하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서 찾아낸 듯, 천천히 읽어 보는 향기 울 먹, 울컥 온몸 가득 흥건하다
▶어느 날 난 화분을 옮기려다가 실수하여 난 꽃대를 부러뜨렸다.
너무 아깝고 난에게도 미안하여 물 컵에 그 꽃대를 꽂아놓았다. 식탁위에 있던 난 꽃대에서 꽃봉오리가 터지고 난 꽃이 활짝 피었다. 아버지께서 수묵화의 기초는 난을 잘 치는 것이라며 난 몇 장을 그려 주셨었다. 물 컵에서 피어난 난 꽃을 본 순간 문갑서랍에 소중히 간직했던 아버지께서 주신 난 그림을 가만히 펼쳐 보았다. 아버지의 말씀이 귓가에서 되살아났고 아버지의 임종 순간이 떠올랐다. 난 꽃향기가 아버지의 체취인양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가 너무도 사무치게 그리워 울먹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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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04년 수필춘추 수필 등단 2008년 미네르바 시 등단 시예술아카데미상, 서울시문학상, 미네르바문학상
시집 『소리를 키우는 침묵』 『미지의 하루에 불시착하다』
『잠을굽다』 『그잠의 스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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