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는 파랗게 운다
이정희
덜 익은 맛은 자유로웠지
곧추세울 척추가 없는 삶 평생 바닥을 전전했던 딸기는 끝내 까만 본심을 드러내지 딸기를 키우면서 저 뻔한 눈가림을 못 배우는 엄마 한때 나의 안락이었던 엄마의 가는 팔 가느다란 줄기 끝에 와서야 비로소 빨갛게 익었지
빗방울은 만개의 드럼 소리를 내고 딸기는 겁먹어 파랗고 껍질 없는 딸기는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참아 속이 뭉개지는 시절이 있었지 한 몸, 한 계절에서 먼저 익은 빨강과 덜 익은 파랑
파랑은 걸음을 기다려야 한다며 느릿느릿 삼월인가 문을 열면 바깥은 이월 꾹 참는 엄마의 추위가 있다
빨갛게 익은 딸기는 우는 일 따윈 없지
▶아프다. 엄마의 청춘은 갇혀 있는 바람이다. 종일 엎드려 딸기밭을 뒤집고 갈아엎어도 가닿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엄마의 낭만은 저 하늘 끝에 저당 잡히고 나의 미래는 캄캄한 밤중이다. 엄마의 무릎 관절은 삐걱삐걱 잠이 달아나는 이유가 되고. 엄마와의 간격에 설득과 이해가 존재하지만 눈물이 먼저 진하게 베여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한겨울 추위. 아직 가야할 길은 멀어 좌절과 체념부터 솎아 내야한다. 질곡처럼 먼, 먼 시간이 흐르고서야 자유를 찾는다. 파란 자유! 설익은 맛, 덜 익은 맛에 단맛이 있을 리 없지만 빨리 익고 싶어 안달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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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2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꽃의 그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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