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물의 속도로
최보슬
나 없이 나는 어디로 갈까
물로 그린 그림이 미끄러진다 계단 밑의 계단을 슬픔이라 불렀지
가장 알맞은 나를 얻기 위해 잘라둔 비밀들을 발에 감추면
웅크린 운명은 보지 못한 꽃잎처럼 그려지겠지
바람이 불고 약한 비가 내리고
그럴 줄 알았어 우리의 얼굴이라는 것이
사라질 물의 속도로 내가 없는 나의 속도로
해명되지 않은 사진 속 박제돼 버린 얼굴로
천국이 굳게 닫힌 얼굴로
계단을 오르는 이야기 정말 그뿐이었는데 계단 밑은 한 칸 한 칸 뒤척일 테지
물 아래로 넘어지는 물 그래서 그려지는 것들이 있다
마른 물과 젖은 땅은 헤어지고 옅어지고 말라가고
가까운 시선일수록 멀게 있을 거란 말을 믿어야 했다
과거를 위해 걷고 나면 한동안 완성되는 침묵의 얼굴
네가 선한 계단을 내려가는 물방울이라면 그래서 창밖을 내다보면
몇 송이의 장미가 먼저 저물고 계단이 계단을 쌓는 동안
모래성이 선명한 기준을 무너뜨린다
안녕, 영원
배웅은 쓰다듬는 것이자 너를 위해 흘러가는 것
땅밑으로 어린 물이 그려지고 손을 숨긴 공들이 저 멀리 던져지고 없는 네가 나한테로 돌아오는 일
어둠에 묻힌 하얀 개가 짖고 있다 소리는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안녕, 지금
가장 알맞은 꿈을 얻기 위해 마른 잠이 쏟아지고 꿈속의 물들은 어떤 소리를 낼까
네가 있는 너의 속도와 가시가 없는 장미의 속도
모든 것이 잠들어 있을 때에
흐르고 있다
너는 단단한 물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떠나려는 잔상들을 모아봅니다 모은 것은 다시 흩어지고, 내게 시란 이런 것입니다 말 그대로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질 것을 알면서도 만나야하는 일 그것입니다 시는 그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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