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꽃의 말을 모르고
조재학
벼랑 끝에 병꽃나무가 떼 지어 피었습니다 붉은병꽃은 입술에서만 맴도는 붉은 전설傳說 한 모금을 머금고 있는 듯합니다
다소곳 고개를 숙인 품이 차라리 하늘을 잊고 계곡의 차가운 물소리에 귀를 대자고 하는 듯도 합니다
초록초록 내리는 오월의 빗물에 그냥 얼굴을 내주고 있는 듯이도 보입니다만
나무는 꽃의 말을 모르고 나는 나무의 말을 모르는 봄입니다
초록 사슴이 살고 있다는 천주호에 닿으려고 우리는 빗길도 마다 않고 걸었습니다.
당신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들이 잡풀처럼 일어납니다 사선으로 몰아오는 비바람이 누운 풀을 일으킵니다
잠자는 이의 고요한 얼굴을 좀 더 보려고 다가가다가 그때마다 침대 모서리에 정강이를 찧곤 했다는 그녀는 그때 부어오른 정강이가 붉은병꽃 색이었다고 웃습니다
숙소를 빠져나온 우리는 이끼 낀 절벽 아래를 걸었습니다 비가 왔습니다
▶포천아트벨리를 찾은 날, 우리는 비를 맞으며 걸었습니다. 오르막길에 아니 내리막길이 되기도 하는 그 길옆에 붉은색 병꽃이 무리지어 피어있었습니다. 어쩌면 자줏빛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를 이 이쁜 꽃들이, 그들을 보고 웃어주는 나에게 시를 선물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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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9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2016년 경상북도문학상
시집 『굴참나무의 사랑이야기』 『강 저 너머』 『날개가 긴 새들은 언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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