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지 않는 골목 _인사동
소하
우산과 우산이 겹쳐지듯 지붕과 지붕이 겹쳐져서 비가 오면 옆집의 울음이 스며들고 해가 뜨면 햇살 한 장으로 다 덮이는
키 작은 생각 하나 골목을 지난다 골목은 아이의 팔목처럼 가늘고 휘어진 마디를 가진 할머니 손가락 같다 삐걱 소리가 날 것 같은 문들은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듯 세월의 흔적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7층 건물에 최근 엘리베이터가 달렸지만 푸세식 화장실은 오랜 친구처럼 여전하다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 사라지는데
입을 열지 않는 목욕탕 굴뚝만 봄날의 입술 앞에 우뚝 솟아 있다 말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듯 말로 다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듯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아이가 시간을 가지고 놀고 있다 손등 위에 올려놓은 공기돌처럼 작은 생각 하나 자라지 않는 골목을 보고 있다
▶섬사람인 제가 서울구경 가서 처음 본 곳이 인사동입니다 서울이라하면 높은 빌딩과 세련되고 깔끔한 사람들 그리고 화려한 풍경뿐일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인사동은 한번에 뒤집어 놓았죠 예뻤습니다 자라지 않는 아이, 피터팬이라도 살고 있을 것처럼... 아련하기도 했습니다 7층 빌딩에 푸세식 화장실이라니요 애틋했습니다 좁은 골목을 감싸고 있는 지붕들이 서로의 어깨를 겯고 함께 걷고 있는 듯 다정해 보였고 서울은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정감 넘치고 따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싶은 것 같았습니다 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새롭게 새겨진 서울의 단상을 기록하였습니다 마음에 담아두고 오래오래 보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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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20년 계간 《시와 편견》 디카시 등단
디카시집『껍데기에 경의를 표하다』『연잎의 기술』 등
2022년 시와편견&한국디카시학 공동 주최 올해의 시인상 수상
시편작가회. 제주 문인협회원.
한국디카시인협회 제주특별자치도지부 운영위원장
웹진 《시인광장 디카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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