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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희 시인 "바탕골 여름밤"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4년 01월 04일
↑↑ 김광희 시인
ⓒ GBN 경북방송





















바탕골 여름밤

김광희

메밀꽃 몇 만평 은하수로 핀 여름밤인데요

꽤쨋불* 연기 온 마당 모기파리 몰아내고

바지랑대 호야불 그네 태워놓으면요

밀짚 끄직대기 감자 쑹쑹 느렁국* 한 너리기* 내오는데요

소깝단* 만한 아배도 한 양푸이 싸리빗자루 만한 나도 한 양푸이

배꼽 툭 불거진 배 툭툭,

짜구난 강새이 푹 퍼진 수지기 되고요

마답 누렁이 뱃구리 가득 찬 꼴 되씹고 또 되씹지요

금년 농사 풍년이다, 부헝! 부엉이 외고 댕기고요

소쩍새도 어디서 한 솥 거드는지 쭉쭉

대청마루 어매는 삼년만 삼 안 삼으모 속세이*로 앞 가루는 기라

외무 같은 물팍 굳은살 백이도록 비비고 또 비비고요

아배가 이바구 퇴퇴 발라 꼬는 새끼

세발네발 길어질수록 밤은 점점 토깨이꼬랑지 만치 짧아지제요

칡넝쿨 뜯게덤불 전설처럼 덮여가는 바탕골

느렁국이 얼마나 구수한지 아는 사람 다 알고요

할매 할배가 생전처럼 일군 메밀꽃밭 수만 평

쳐다보기만 해도 온 동네 배가 부르지요



*꽤쨋불: 보리타작 밀 타작을 하면 나오는 보리수염, 밀수염을 태우는 불

*느렁국 : 칼국수나 수제비 같이 끼를 대신해서 늘려 먹는 국

*너리기 : 바닥보다 입이 넓고 가마솥 높이의 질그릇

*소깝단: 소나뭇단

*속세이: 소쿠리



작가약력

김광희

경주출생
2005년 월명문학상 수상
200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 시 당선
2013년 경주문학상 수상
경주문협회원, 경북문협회원, 시in동인, 경주시낭송회 회원





시 해설


4,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오리를 걸어서 다니던 학교 길은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는 자갈밭 길이었다. 그 길 옆에 펼쳐진 척박한 메밀밭이 눈에 훤하다. 한 뼘의 땅도 귀하던 시절에 언제 또 태풍이 휩쓸고 갈지 모르는 자갈밭에 하얗게 꽃피웠던 그 메밀꽃은 달밤에 보면 더욱 하얗게 빛이 나서 서러웠다. 그 때는 하늘도 유난히 낮게 내려와 하얗게 핀 은하수가 메밀꽃 같았다.

굶지만 않으면 부자였던 시절, 긴 한 여름 낮의 아이들 배는 더 빨리 꺼졌다. 쌀구경하기 어려운 시절에 주식대용으로 끼를 늘리는 음식으로 칼국수나 수제비, 씨락국을 느렁국이라고 했다. 식구는 많지, 그 식구들 배를 다 채우려면 다른 양념이 뭐 있을게 없었다. 감자 쑹쑹 썰어 넣고 거섶(채소)으로 애호박이나 정구지(부추) 쑹덩쑹덩 썰어 넣어 백철 솥에 가득 끓이는 것이다.

그 느렁국 한 너리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면 볏짚으로 만든 덕시기(멍석)도 닳을까봐 밀짚으로 만든 끄직대기에 허기로 초롱초롱 밝은 눈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지랑대에는 호야불이 그네를 타고 있고 바로 옆 마답에는 누렁이가 낮에 산에서 뱃구리에 채웠던 꼴을 되새김질을 하느라 덩겅덩겅 요령을 흔든다. 매캐한 꽤쨋불은 이리 저리 머리를 풀어 흔들며 모기를 몰아낸다. 강아지까지 한 양푼이씩 끼고 앉아 김 후후 불어가면서 먹던 그 느렁국 맛은 지금도 입맛이 저절로 다셔지는 것이다.

그렇게 식구들 배를 채우고 나면 부러울 것이 없는 아배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바구를 퇴퇴 발라가면서 새끼를 꼬셨다. 어매는 아직 열 살도 안 된 나에게 여자는 삼년만 길쌈을 않하면 앞을 소쿠리로 가려야 한다는 속담을 들려주며 버리더라도 배워야 한다고 외무 같은 물팍에 삼을 비비고 또 비비며 길쌈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어린 동생과 나는 부엉이 소리 뒤에 따라온다는 호래이(호랑이)가 무서워 아배 물팍에 머리를 쑤셔 넣고 엎드렸다. 아배가 들려주시는 호래이 담뱃대가 가물가물 흐려지고 하늘에 계신 할매 할배가 가꾼 수만 평 메밀밭을 하얗게 뒤덮은 꽃이 이슬로 내려왔다.

이제는 뜯게덤풀 칡넝쿨이 전설처럼 덮여서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풍요롭고 따스했던 그 시절이 그리운 내 고향 바탕골 여름밤으로 돌아가 보았다. (김광희)
황재임 기자 / gbn.tv@hanmail.net입력 : 2014년 0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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