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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리'의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탐방기 -5-

7월 2일 /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부하라 여행
황명강 기자 / test@test.com입력 : 2017년 08월 02일
2017년 7월 2일 / 부하라



오늘부터 고대 도시 부하라의 일정이 시작된다.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인 비하라, 즉 사원이라는 뜻으로 과거에 197개의 모스크와 167개의 마드라사가 있을 정도로 중앙아시아의 종교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사마르칸트가 문화 중심지이자 문화수도로 유명하다면, 부하라는 중앙아시아 이슬람인의 마음의 고향이다. 그래서 메카를 가기 어려운 이슬람은 부하라로 성지 순례를 오기도 한다고 한다. 부하라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조로아스터교에서 불교, 다시 이슬람으로 그 문화를 변모하며 번영하여 왔으나 20세기 교통수단의 발달로 그 중개 기능을 잃으면서 쇠퇴하였다. 현재의 부하라는 다시 한 번 옛 영화를 꿈꾸며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그 모습을 변모하고 있다.

ⓒ GBN 경북방송

우즈베키스탄 인, 특히 부하라 인들은 이전에 실크로드의 대상인이었던 소그드인의 후손이라고 믿어진다. 현재 부하라에는 타지크 족이 많으며 조로아스터교의 후손인 파르시도 살고 있어, 페르시아 어도 일부 통용된다. 전체 부하라 주의 인구는 2백만이나 부하라 시의 인구는 40만 이라 하니, 한가로운 느낌이다. 지금은 더운 여름이라 믿기 어렵지만, 겨울의 부하라는 영하 1ㅡ2도에도 매우 추운 바람이 불어 밖에 나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심지어 영하 10-20도인 모스크바보다도 체감온도가 더 낮다고 하니 상상이 잘 안 된다. 이번 여행은 부하라를 보기 위해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인 만큼, 필요한 장비를 잘 챙기고 가능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나선다.

여느 때와 같이 버스에 올라, 첫 일정은 여름 궁전. 그 이름은 쉬토라이 모히호사. 달과 별 궁전이란 로맨틱한 이름이다. 부하라는 볼셰비키 혁명전인 1917년까지 에미르가 다스리는 독립적인 부하라 공국이었다. 부하라의 여름은 매우 덥기 때문에 마지막 에미르는 여름궁전을 많이 애용했으며, 여기에서 외국으로부터 귀한 선물을 가지고 온 외교사절이나 상인들과 접견이 이루어졌다. 마지막 에미르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을 때 아프가니스탄으로 망명했으며, 그 32명의 후손은 지금 미국에 산다고 한다. 이 때 이 에미르가 금괴를 모두 가져가지 못했으며, 그 금이 아직도 부하라에 묻혀있다는 이른바 보물에 대한 소문이 지금까지도 부하라에 종종 돌아다닌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에는 러시아 정부기관이 입주해 있다가 영빈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치형태의 문을 들어서니 아름답게 푸른색으로 장식된 테라스가 보인다. 뒤로 유리를 대고 조각을 덧대어 붙인 호화롭게 만들어져 있다. 첫 번째 중심 건물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사자가 있는 문을 거쳐 화려한 부하라 스타일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오른쪽 옆으로는 에미르가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샹들리에가 화려한 방이 있다. 뒤에서 유리를 덧대고 조각을 한, 다양한 실내장식을 한 방을 거치면 이후 온통 색유리로 이루어진 방에 도착한다. 이 방들은 모자이크 장식이 벽과 천장에 모두 빼곡하니 들어차 있어 아름답기도 하지만 어지럽기도 하다. 부하라 양식과는 차이가 많이 있어서 물어보니,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러시아의 샹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를 오래 해서 로마노프 왕조의 양식과 상당히 유사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각각의 방에는 러시아식 벽난로인 페치카가 수입한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실제 사용되는 것은 아니고 오로지 장식용 이라고. 유리로 된 창문을 통하여 창밖의 장미와 정원이 보인다. 색유리를 통하여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 GBN 경북방송

정원에는 공작이 돌아다니다 더웠는지 땅바닥에 엎드려있다. 너도 지쳤구나. 이 곳 사람들은 공작이 원래 천국에서 살았으나 잘못을 저질러 그 곳에서 쫓겨나서 이 부하라가 아름다운 곳이어서 이곳에 살게 되었다고 믿으며 공작을 잘 보호한다. 재미있는 것은 날씨가 더워서인지 공작의 풍성한 꼬리가 보이질 않는다. 여러 방에는 당시 사람들이 손으로 짠 수제 카펫과 벽걸이들이 걸려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문양을 볼 수 있는 데, 그 의미는 조금 더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에게 친숙한 딸기와 비슷한 문양도 보인다.

다음은 티 하우스.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보낸 선물인 여러 가지 도자기가 보인다. 왕비의 방은 화려하게 초승달로 장식되어 있으며, 왕비 4명이 따로 떨어져 살았던 여름 궁전의 건물에 들어가니, 당시 입었던 옷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의 왕은 8겹의 옷을 입었다고 하니, 그 때의 느낌으로는 풍채가 당당했겠으나, 지금 보니 좀 부은 느낌도 있다. 에미르의 금실로 장식된 옷과 모피 모자를 보니 이것도 역시 더워 보인다. 옷 자체는 좀 두꺼우면서도 자수가 풍성하게 들어가 있어, 예전에 보았던 크리스챤 디올의 러시아에서 영감을 얻은 의상전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슬람 율법에는 남성의 옷에 여성의 손길이 닿아서는 안 되어, 이런 이유로 남자의 옷은 남성 재단사가, 여성의 옷은 여성 재단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궁전의 곳곳에 팔각 장식이 보여서 물어보니, 4계절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고 한다. 건물들은 모두 뜨거운 열기를 견디기 위해서인지 벽이 상당히 두껍게 되어있다. 외국의 사절이 머물렀던 게스트 룸은 옷장이나 가구를 배치하지 않고, 감실을 파서 침구를 여럿 배치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 궁전의 일부에는 높은 전망대가 있고, 그 앞에 사각형의 연못이 설치되어 있다.

ⓒ GBN 경북방송

예전에 에미르가 다스렸을 때에는 많은 부모들이 꽃다운 17-18세의 처녀를 바쳤고, 그 하렘의 여성들이 연못에서 수영을 할 때 에미르가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사과를 던지면 그 날을 그 여성과 보내는 식이었다고 한다. 갑자기 아담과 이브에서의 사과가 생각난다. 전망대 옆에서는 우즈베키스탄 고유의 음악이 담긴 CD를 팔고 흥정하는 상인과 수놓인 식탁보를 흥정하는 여인이 있다. 다들 왠지 그리울 것 같다며 부하라 고유의 음악 CD를 앞다투어 산다. 석류가 화려하게 수놓인 식탁보는 놀랍게도 한국과 같이 석류 안에 씨가 많으니 많은 자손을 바라는 의미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같은 의미로 이를 규방 앞에 심으니 참 비슷한 관점이다.

ⓒ GBN 경북방송

이제 궁전 구경은 끝났으니 삶의 현장을 소환할 때이다. 바로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시장 투어.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경제나 외채 사정이 좋지 않아서, 공식 환율과 암시장 환율에 크나큰 차이가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지페인 숨을 준비하여 물건을 살 준비를 한다. 세상 어디나 그렇듯이, 왁자지껄 흥정을 하며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지나 본격적인 시장으로 간다.

시장은 크게 견과류를 파는 부분과 야채 및 고기류를 파는 시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일단 야채 및 과일류를 파는 편으로 진입하여, 내가 평상시 좋아하는 버찌를 산다. 초등학교 시절 여섯 꼭지쯤 묶어놓고 100원 정도 했던 바로 그거다. 붉은 빛이 터져 흐르는 체리가 아니라, 노랗고 빨간 버찌이다. 가격을 몰라 5천숨 (한화 약 800원) 을 내밀며 달라고 하니, 양이 꽤 많다. 그 다음은 자두의 야생종처럼 보이는 과일이다. 역시 5천숨을 내놓으니 커다란 비닐봉지로 한가득 준다. 과일 풍년인데, 들고 다니려니 참 성가시기도 하다. 다음 견과류 시장에선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한다. 과일 시장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기며, 간단히 한 소쿠리에 색색으로 동그랗게 돌려서 담은 견과류를 구입했다. 이걸로 시장보기는 이제 끝. 더 사려고 해도 남는 팔이 없다. 여행에서 짐은 괴로움과 동일한 단어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짐을 줄이려 해도 욕심이 앞서서 잘 안 되는데, 여행에서는 확실히 절제가 가능하다.

성경의 기록에는 불확실하지만, 선지자 야콥이 이 일대를 방문했다고 한다. 당시 이 사람들이 물이 없어서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 선지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지팡이를 땅에 꽂으니 그 지팡이에서 물이 솟아나왔다고 한다. 이곳이 오늘날 야콥의 샘으로 알려져 있으며 차슈마 아유브로 불리고 있다. 지금까지도 물은 졸졸졸 나오고 있고 이 물을 마시면 무병장수 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맛을 보곤 한다. 철분과 미네랄이 많이 있는 아주 찝찔한 맛이다. 이 물을 마시고 난 후, 사람들은 저녁에 배가 아파서 데굴데굴 굴렀다. 배탈이 나서 살이 빠지는 통에, 날씬하게 오래 살게 되는 지 참 모를 일이다.

ⓒ GBN 경북방송

차슈마 아유브 관람 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9-10세기경의 이스마엘 샤마니 묘에 들어가 보았다. 영묘 건물 내에는 벽돌을 이용하여 쌓아서 여러 가지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연꽃을 이용한 무늬는 불교에서 아치 모양의 창문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위에 올라와 있는 묘소는 실제의 묘가 아닌 가묘이며 실제 시신은 지하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샤마니의 영묘는 타지키스탄에 있으니, 여기에 묻힌 사람은 샤모니의 아들이라고. 본래는 영묘가 아니라 샤모니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이로써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 일행은 부하라인과 결혼한 한국여성이 한다는 식당으로 향하였다. 꼭 한국의 1990년대 맥주집 분위기이다. 오는 길에 일요일만 문을 연다는 도매시장인 karvan 시장이 열린 것을 보았다. 간단하지만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한 후에는 달콤한 낮잠 시간이다. 오후 1-3시까지는 너무 덥기 때문에 관광을 하는 것보다 쉬는 편이 낫다. 스페인의 낮잠인 시에스타와 같다고나 할까.

오후 관광은 연못 앞의 볼로 하우스 모스크에서 시작한다. 볼로 하우스 앞에는 김정민 박사님이 이야기한 천국으로 오르는 문인 커다랗게 장식된 나무기둥이 우리를 반긴다. 가이드 분이 실제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기대를 했으나, 역시 기도는 작은 목소리로 하는 법인지 중얼 중얼 하는 소리 외엔 듣기 어렵다. 제사보다 잿밥이듯이 기도보다는 모스크 안의 빛나는 장식에 관심을 주었다. 진지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현지인들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스스로가 좀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스크 내부는 단순하게 하얗게 칠해져있고, 일부분만 화려하게 색색별로 장식이 되어 있다. 이러한 장식들을 관찰하여 보니, 일일이 타일들을 모양별로 붙여서 만든 것이다. 거리로 나오니 금속장식 접시를 만드는 장인의 집이다. 단순하게 정과 끌로만 금속 접시를 파내면서 조각하고 있는 데, 정말 기계보다 빠른 정교한 손놀림이다.

ⓒ GBN 경북방송

두 번째 발자국은 1900년대까지 에미르가 살던 아르크 성에서 시작한다. 이곳이 바로 부하라의 옛 중심지이다. 여기에서 보면 부하라의 느낌이 마치 황토색으로 이루어진 고대의 성 같다. 원래 흙벽돌이어서 상당한 부분이 무너져 있어 복원할 때는 구운 벽돌을 사용하고 있단다. 알고 보니 1920년대 붉은 군대가 이 성에 폭격을 퍼 부어서 많은 부분이 부서졌다고 한다. 성의 앞은 굳건한 모습인데 옆으로 돌아가니 아직도 허물어진 벽돌 위로 풀이 한 무더기 자라나고 있다. 바로 여기서 부하라 패션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성은 7세기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에 부하라의 에미르가 사마르칸트에 갔다가 그 곳의 공주를 보고 반하여, 청혼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청혼을 하니 사마르칸트의 에미르는 공주를 주기 싫어서 소 한 마리로 성을 만들라고 했단다. 이 기막힌 요구에 에미르의 책사는 소가죽을 가늘게 잘라서 가죽으로 된 실 753미터를 만들어 높이 20미터의 성을 만들어 성공을 시켰단다. 이 성을 만들 때 2번이나 실패를 해서 3번째 시도 할 때는 북두칠성에 기도를 올린 후 7개의 나무기둥 위에 성을 쌓으라는 계시를 받은 후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예나 지금이나 집터 잡기는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북두칠성 기도를 올렸다 하니 한국의 칠성당이 생각 난다. 성문 안에는 16개의 마을이 있고 그 직분에 따라 업무에 종사했었다. 감미로운 전설과는 달리 성문 안으로 들어가니 음침한 방에 갇힌 인형들이 보인다. 감옥인데 20세기 초에도 스파이로 갇힌 2명의 외국인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당시 부하라 공국의 왕들은 난폭해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도 했으니, 당대에 가장 많은 피를 본 곳이라고.

이후 우리는 성을 거슬러 올라가 성내의 주마 모스크, 금요일의 모스크에 도착했다. 모스크 앞에는 작은 빈 터가 있으며, 모스크에는 나무로 만든 캐노피 구조가 덧붙여져 있다. 내부는 식물 모티브와 아라베스크 무늬로 정갈하게 장식되어 있다. 갈 길이 멀어 과감하게 성 안의 역사박물관으로 발걸음을 향하였다. 그 다음은 성 안의 역사박물관이 목표다.

역사박물관 안에는 선사시대의 주먹도끼부터 무덤에서 발굴된 목걸이와 귀걸이, 왕이 썼던 옥좌 등 당대에 사용하였던 여러 가지 물품까지 다양한 전시품들이 있다. 무덤에서 발굴된 유품들은 조로아스터교 이전의 묘에서 나온 것이고, 특별히 그릇들은 사람이 죽으면 일주일간 신의 재판을 받는데, 그 때 신에게 바치는 음식이라고 한다. 부하라 왕이 썼다는 독한 술을 만들기 위한 증류기가 있는 데, 애주가들이 탐낼 만하다. 아울러 일본과 중국, 기타 인도에서 부하라 왕에게 보낸 선물들이 많이 보인다. 왕비의 옷도 전시되어 있는 데, 긴 전통적 가운 위에 자수로 된 스카프를 두르고 머리에는 역시 자수가 수놓인 모자를 쓰고 있다. 박물관을 닫을 시간이 되어 황급히 왕위 계승이 이루어지는 대관식 홀로 이동하였다. 부하라의 지배자는 바로 여기에서 목재로 만들어진 화려하게 칠하여진 감실에 앉아서 대관식을 행하였다. 이제 성에서의 일정은 끝이 났다.

ⓒ GBN 경북방송

성을 떠나 오늘의 하이라이트 칼란 미나렛이 있는 광장으로 향하였다. 칼란 미나렛을 사이에 두고 미르 아랍 마드라사와 칼란 모스크가 서 있다. 칼란 미나렛은 이른바 사막의 등대로 불렸던 첨탑으로 12세기경 벽돌로 지어졌으며, 높이 46미터에 24시간 계속 불을 켜 놓아 카라반 일행의 등대로 쓰여 졌다고 한다. 본래 이러한 첨탑은 6명으로 구성된 무이진들이 예배를 알리는 아잔을 합창하기 위한 용도이나, 부하라가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인만큼 복합적인 기능이 부여된 것이다.

이 첨탑을 휘감은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그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올라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사실 너무 더워서 올라가라고 해도 사양하고 싶다. 칭기즈칸도 이 앞에서 우연히 모자를 떨어뜨린 후에 그 웅장함에 반해 파괴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 미나렛은 이 도시의 역사 그 자체라 볼 수 있겠다. 칼란 이라는 말 자체가 큰 또는 웅장한 이라는 뜻이고, 본래 더 높았으나 지진으로 인해 현재의 높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 머나먼 사막을 건너서 이 불빛을 보았다면 그 때 카라반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벽돌 자체는 계란 흰자, 낙타의 젖을 이용하여 반죽을 해서, 다른 벽돌보다 훨씬 단단하다고 한다. 이 첨탑은 부하라의 역사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고, 또한 시대에 따라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심지어 18세기경에는 공개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거참 잔혹한 역사이기도 하다.

ⓒ GBN 경북방송

맞은편의 미리 아랍 마드라사는 아랍의 왕자를 뜻하는 교육기관으로 오늘날의 이슬람 대학이다. 이 마드라사는 16세기에 지어져 오백년 동안 수많은 신학자를 길러내었다. 이 마드라사의 앞문인 파사드는 수많은 모자이크 타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구소련이 지배하던 시대에도 문을 열었던 거의 유일한 중앙아시아의 신학교라니 그 중요성을 알 수 있겠다. 마드라사에 입학하면 7년간 아랍어, 코란, 이슬람법을 1대 1 교육을 받고 이후 종교적 지도자인 이맘이 된다. 이 마드라사의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우리는 다시 칼란 미나렛과 연결된 칼란 모스크로 전진한다.

이 모스크의 앞마당에는 200년이 넘는 뽕나무가 있는 데, 특이하게도 하얀 오디가 열린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 하얀 오디를 맛 볼 계절은 아닌 듯하다. 옆에는 종교적 신념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이슬람 11명 학생의 기념비가 오늘날에도 우뚝 서 있다. 15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한 이래로 부하라에서 중앙 모스크로 이용된 것이 바로 이 칼란 모스크이다. 건축물의 규모로는 사마르칸트의 비비하눔 모스크보다 약간 작은 정도이지만, 실제 둘러싸고 있는 면적에 있어서는 비비하눔 보다 크며, 신도 1만 명이 동시에 기도를 올릴 수 있다. 288개의 조그만 돔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에 들어가니 이 돔들이 서로 연결되어 스피커 역할을 하게 되어 있고, 하얗게 칠해져서 특별한 장식 없이도 종교적 분위기가 더하여 진다. 돔의 맨 위는 동그랗게 뚫어져 있는 데 어떤 기능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모스크에서 나오니 상인들이 슬슬 접근하기 시작한다. 부하라에 관한 사진집을 팔고 있는 데, 처음에는 10불을 부르더니 떠나려고 하니 황급히 붙잡고 8불에 흥정을 한다. 기분이다 하며 한 권을 샀다.

우리는 다시 미르 아랍 마드라사 앞을 지나서 카펫 가게로 향한다. 일단 실내에 들어가니 시원해져서 살겠다. 카펫 가게 주인의 아이가 카펫 위를 즐겁게 뛰어다니며 우리 일행이 신기한지 연신 만져본다. 역시 아이는 아이라 외국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 일행의 부채를 만지며 놀다가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까르르 웃음만 터진다. 비단으로 짠 수제 카펫이라서, 보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바뀐다. 가격을 물어보니 60x40CM 만한 것이 최소 40만원 이고, 문양이 복잡할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방에 깔 만한 카펫은 최소 300만원 이었으니, 마음에는 들지만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카펫 가게에서 조금 쉰 후에는 예전 대상들의 거래 장소로 사용되었던 돔형의 건물로 들어갔다. 낙타를 타고 통과할 수 있도록, 문의 아치가 매우 높이 설계되어 있다. 건물의 안에서는 여전히 상인들이 관광객들과 기념품을 흥정하고 있다. 전통악기를 연주하면서 파는 상인도 있었는데, 학생들이 마지막 흥정을 통해 작은 손으로 두들기는 드럼을 20달러에 획득했다. 나도 역시 흥정을 통해 30% 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꽃을 수놓은 방석을 구입하였다. 그 외에도 부하라의 특산품이라는 종이 공예를 할 때 사용하는 학 모양의 가위를 구입하는 분도 많았다. 물건을 구경하면서 돔형 건물로 덮은 노천시장인 토키와 옛 목욕탕 자리를 거쳐 라비 하우즈 쪽으로 도착하였다.

이 근처에는 옛 카라반의 숙소인 카라반 세라이 건물도 있다. 라비 하우스의 광장 앞에는 당나귀를 탄 호자 나스루딘의 동상이 서 있다. 그는 풍자적인 이야기로 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시인이며 일명 ‘현명한 바보’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동상 역시 유머에 넘쳐 있어 나스루딘은 가려고 하는 데 당나귀는 가기 싫어서 뻗대는 표정이다. 어린이들은 그의 당나귀에 같이 앉아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오쇼 라즈니쉬의 풍자 소설 배꼽에 나오는 해학적인 뮬라 나스루딘이라는 인물과 동일 인물이라는 설도 있는 데, 확실하지는 않다. 이제는 사랑스러운 저녁이 시작될 시간이다. 나스루딘의 동상 뒤에 있는 당시의 이 지방의 실력자인 나지르 지반 베기가 만든 쿠켈디쉬 마드라사의 정원이 오늘의 저녁 장소이다.

ⓒ GBN 경북방송

마드라사 건물의 안에 있는 정원에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테이블에 앉아서 타는 목을 맥주로 축이며 요리를 먹고 있으니, 전통 악기를 든 악사들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악사들의 연주가 시작되며 부하라 전통의상에서 영감을 얻은 옷을 입은 모델들이 그 자태를 뽐내며 패션쇼를 한다. 손자수로 수놓은 옷이 멋져 보이기는 한데, 덥게 보여서 사고 싶은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모델들도 개성이 있고 손님들도 각자 보는 눈이 달라, 서로 선호하는 모델이 다르다.

패션쇼 중간 중간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나와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을 휘두르며 전통춤을 보여준다. 허리를 뒤로 굽히는 동작이 아주 유연하고 아름다우며, 손의 움직임이 많아서 현란하게 보인다. 그야말로 부하라의 음악, 패션, 전통 문화 등 모든 것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종합 세트장이다. 경주에는 아직은 춤, 쇼핑, 먹거리, 문화 등을 이렇게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 아직 없다. 이 나라가 아직 한국보다 발전이 덜 된 국가이지만, 관광에 있어서는 우리도 배울 점이 있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각자 마음에 드는 옷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즐겼다. 이탈리아에서 온 그룹은 아예 입을 벌리며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델들이 여간 날씬하고 어여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

식사 후에는 약 1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이 주어져서, 여러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서 기념품 쇼핑을 했다. 거리를 자유로이 거닐며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아, 하얗고 구슬이 알알이 박힌 사각 모자와 부하라의 특산품인 손으로 그린 그림이 들어간 찻잔을 샀다. 도자기 가게 주인이 자신의 가게 물품은 그렇게 비싸지 않다며, 실제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간단하게 붓으로 쓱쓱 문양을 그리는 데, 정말 빠르게 하나의 찻잔을 완성한다. 모자를 쓴 채 관광버스 안에 돌아오니, 가이드가 웃으며 이 흰색 모자는 갓 결혼한 신부가 1주일 동안 쓰고 다니는 것이라고 해서 사람들과 한참을 웃었다. 이후 우리 버스는 부하라의 옛 시가지를 출발하여 부하라 그랜드 호텔이 위치한 신시가지로 향한다. 호텔에 도착하니 피로가 밀려왔다.
황명강 기자 / test@test.com입력 : 2017년 08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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