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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걷다, 길` / 여국현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10월 31일
걷다, 길

여국현


I
어두운 도시의 거리를
날개 다친 새처럼 허위적 거리며 걷다가
목덜미에 차갑게 내려앉는 물기에 고개를 들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파란색 원피스를 입었던 캐스터는 틀렸다
불길한 기운 가득한 지하 묘지의 입구처럼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쏟아내는 지하철 입구에
무리지은 이들이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들 무언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듯
하늘을 보았다 땅을 보았다
몇몇은 맞은 편 버스정거장 쪽을 힐끔 거렸다
몇몇은 결심이나 한 듯 길을 나섰다

II
갈 곳이 있는 사람의 발걸음은 단호하고 가볍다

III
가볍고 단호한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하던 때가 있었다
걸어가는 걸음의 한결같음을 의심하지 않았고
다가오는 길의 낯설음을 겁내지 않았다
가는 쪽으로 바람이 불어주지 않아도
좁고 어두운 골목에서도
두렵지 않았다어디로 가는지 알고 걷는 걸음이었고
보이지 않아도 길은 있을 것이었으니

IV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어둠은 더 깊어졌다
자동차 불빛들이 어지럽게 뒤섞이고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졌다
일기예보를 틀린 그 기상캐스터가
불안한 눈빛으로 내일의 날씨를 예보할 때 쯤
멈추었던 길을 다시 나선다
더 이상 단호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걸음으로

V
눈앞의 길은 빗속에서 뿌옇고
마주 달려오는 바람은 얼굴을 따갑게 밀어대지만
걷는다
걸어야 한다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어디로라도
어기적거리며 걷는 걸음으로라도 멈춤 없이
걸어야 한다
가볍고 단호한 걸음으로 걷던 시절이 지났더라도
길이 연이어 길을 내어주던 시절이 지났더라도




▶다시 안개 길이다.
다시 넘어지고 다시 비틀거린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나도 우리도 언제나 그렇게 멈추지 않고 걸어 왔다.
어쩔 수 없다고 주저앉을 수 없고 그러지 않았다.
길이 없는 듯 보일 때 그때 우리가 멈추지 않고 걷는 일, 길은 다시 그렇게 난다.




ⓒ GBN 경북방송





▶약력
  2018년 푸른사상 신인상
  시집 「새벽에 깨어」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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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 여국현 푸른사상 새벽에깨어 김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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