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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자루와 자두` / 지관순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19년 11월 21일
자루와 자두
지관순
자루에는 새가 들어 있고 자두에는 씨가 들어 있습니다 자루는 움직일 수 있고 자두는 굴러갈 수 있죠 자루는 자두를 의심하기 좋아하고 자두는 자루를 벗기기 좋아합니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자루와 자두에 관한 내연의 질서
자루는 자두를 조용히 이끌 수 없을까요 새를 날려 보내면 자루는 꺼지고 자두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갑니다 자루와 자두는 함께 묶을 수 없습니다
물에 빠진 자루를 무시합니다 물에 뜬 자두를 툭 건집니다 자루를 건지는 일은 의욕이 필요하지만 자두를 모른 척하는 일은 식욕에 관계되는 일 자루 앞에 놓인 자두
자루를 자두에 담습니다 자두밖에 보이지 않는 자루 눈앞이 캄캄한 자루 배부른 자두 입이 무거워서 또박또박 눈물 흘리는 자두 자두에 갇힌 자루의 불안 자루에 눌린 자두의 자유
새는 어디서부터 지워야 합니까
▶시간은 속이 빈 자두와도 같고 느닷없이 과즙 흘리는 과육과도 같거나 자루를 가둔 자루처럼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루는 자두로써 다른 하루는 자루로써 살아갑니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진하게 덧칠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나의 한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야!
한계를 어루만지고 돌아온 자들의 새장에는 그런데 다만 지워져 가는 새이면서도 멀리 날아가 발산되는 무늬가 들어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그 무늬를 자루 속의 자두로써 가둬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설마 아름다울 거야. 우리는 모두 우주라는 자루에 담긴 자두니까.
오늘도 한계만큼 붉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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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제10회 최치원신인문학상 수상으로 2015년 『시산맥』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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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19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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