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말을 걸어오다
권순자
종로에 5호선 지하철이 파도처럼 부려놓고 간 사내의 두 발, 발가락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평행으로만 가는 내 두 발이 그의 다정한 두 발을 바라본다 발이 마주 절하고 있다 오른발이 왼발에게 말을 걸고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그래 오늘은 편안하였니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는다
평생 평행으로만 걷는 발이 평행을 포기하고 마주보고 걷는다 서로가 서로의 부처가 되어 오체투지하는 만물의 얼굴이 두 발에 담겨 있다 두 발이 부부 같다
남녀가 평행으로 뻗치며 독선을 고집하는 막막한 세상에 마주보는 왼발 오른발이 나누는 대화 너무나 애절하다
모든 다른 발들이 평행으로 가는데 그의 두 발이 마주 서로를 보듬듯 걷고 있다
▶‘다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숲을 바라볼 때 여러 가지 나무들의 키, 잎, 줄기가 달라서 다채롭듯이 풀과 나무들이 성질이 서로 달라서 햇볕을 나름대로의 힘으로 받아서 자란다. 달라서, 달라 보이는 대상을 통해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다각적으로 사유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생각이 풍성해지고 깊어진다. 보듬고 더불어 스스로 윤택해지는 자연, 사람을 통해서 나도 생각이 유연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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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86년 《포항문학》에 「사루비아」외 2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03년 《심상》신인상 수상.
2001년 동서커피문학상
2003년 시 ‘장마’로 시흥문학상
2012년 아르코문학상 수상.
시집 『우목횟집』 『검은 늪』 『낭만적인 악수』 『붉은 꽃에 대한 명상』 『순례자』 『천개의 물』
『청춘 고래』
수필집 『사랑해요 고등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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