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박천순
노을이 바다 위에 엎드려 있다 이 물빛 빚느라 바다는 46억년이 걸렸다 저 춤사위에 스민 노을은 얼마일까 바다 삼킨 속울음은 얼마나 될까 젖은 갯벌 위 생각에 잠긴 신발이 걸어간다 발자국은 이내 지워져도 먼 길 돌아온 신발에서 부르튼 각질이 파도가 되고
공중을 떠돌던 세포들이 모이고 모여 내가 된 기적 신이 나를 빚는데도 46억년이 걸렸다 어느 파도를 밟고 어느 가슴을 품고 여기까지 왔는가, 신발이여
걸을수록 무거워지는 발바닥에 긴 시간 유전된 길이 새겨져 있다 내 몸 가장 어두운 곳에서 홀로 새긴 몸속 지도 신발 한 켤레의 씨줄 날줄
일출에서 일몰까지 닳은 뒤꿈치에 매달려 온 하루 70만 번의 파도 견디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어간다 바다를 향한 신발 코에 붉은 노을 한 점 반짝!
▶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걷다 생각한다. 유일무이한 존재로 태어난 우리는 수많은 파도를 견디며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몸에서 가장 낮고 어두운 발바닥은 정직한 몸의 지도이다. 그 지도를 품고 서쪽으로 서쪽으로(삶의 끝) 걸어가는 신발 코에 노을이 위로하듯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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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1년 《열린시학》 등단
열린시학상, 시산문학상 수상
시집 『달의 해변을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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