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푸른 꽃그늘 아래
서승석
아몬드꽃 하얗게 물드는 3월 말 애연하고 한적한 석양 무렵 까마귀 몇 마리 고즈넉이 나르는 오베르 쉬르 와즈Auvers-sur-Oise 빈 들에 서 보면 길은 있으나 출구가 없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절박한 심경이 또렷이 보인다
반 고흐가 두 달 남짓 머물며 70여 점의 그림을 그리며 마지막 생을 불태웠다는 ‘라브 여인숙Auberge Ravoux’ 담벼락에도 교회 지붕 위에도 이끼 낀 앙상한 나뭇가지며 돌부리에도 아직도 그의 시선과 체취와 절규가 남아있는 듯
그가 처음에 목사가 되려 젊은시절 체류했던 벨기에의 탄광촌 몽스에서부터 반 고흐 미술관이 있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거쳐 화가의 발자취를 따라 지구를 몇 바퀴 이제 그는 가고 없는 적막한 프랑스의 오베르 쉬르 와즈에서 극동에서 14시간을 날아온 나는 작고 허름한 카페에 앉아 거룩한 의식처럼 술잔 위에 구멍이 숭숭 난 찻숟가락을 얹고 그 위에 또 각설탕을 얹고 초록빛 술병을 조심히 기울여 똑똑 떨어진 압셍트를 음미하며 짙은 감흥에 취해본다
반 고호의 투명한 영혼과 나의 노오란 광기가 만나 까마귀 나르는 밀밭 위에서 한바탕 흐드러지게 춤을 춘다
테오와 나란히 누운 그의 초라한 무덤 위에 따사한 햇살이 잠시 애수처럼 내려앉을 뿐
▶삭정이에 이는 매서운 북풍 같은 고흐의 그림에 매료되어 수없이 그의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그리고 그의 고독과 광기의 흔적을 더듬어보려 그가 살던 곳, 잠든 곳을 찾아도 보았다. 뭉클한 감동을 주는 예술혼의 시원을 찾아서...... 이국 소녀의 가슴을 적시는 고흐의 처절한 조형적 투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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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3년 《유심》 평론 부문 신인상
시인, 예술평론가, 한불문화예술협회 회장
시집 『자작나무』 『흔들림에 대하여』 『사람 사랑』 『그대 부재의 현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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