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샤워기
정윤서
욕실 벽에 매달린 해바라기 샤워기가 구멍 촘촘 물방울 머금고 있다 햇빛과 바람만이 끼니의 전부이던 때 온통 그을려야 생이 여문다 믿었던 적 있다
품었던 씨앗들을 모두 탈골해 버리고 꺾어진 목으로 바닥을 향한 해바라기 반 평짜리 부스에서 고개 떨군 채 욕실 벽 파고든 제 밑동을 쳐다본다
벽 속 숨겨진 저 물관 따라가면 눈물의 근원에 도달할 수 있을까 땡볕 속 그늘나무 곁을 에돌던 그 사람은 어디에 도착해 있을까
빈집에 남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불혹을 넘어서도 가진 것은 눈물뿐 몸속의 누수를 감추고 또 감춰야 했던 쭉정이의 시간이 거울에 남는다
햇볕과 바람만이 끼니의 전부이던 시절 결코 울지 않겠다고 버티던 그녀의 눈물샘에 그렁그렁 물방울이 맺혀 있다
▶내 안의 문제와 내 밖의 문제들로 인해 죽음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김포에서 출발하여 해가 질 무렵 사천 공항에 내렸다. 삼천포의 파도에 묻혔다가 새벽녘 들어간 숙소의 샤워기에 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툭 치면 금세 떨구어질 그런 물방울이었다. 순간, 내 처지와 같다는 생각에 한참을 주저앉아 바라보았다. 외롭지만 평화롭고 고통을 수반하지만 희열이 느껴지는 때로는 솟구치듯 흘러가는 것이 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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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20년 《미네르바》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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