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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진의 역사산책(41회)

여우바위의 비밀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5년 02월 12일
ⓒ GBN 경북방송

※오늘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까?
혹시 내남면 안심리에 가면 ‘여우바위’로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한 번 가 보셨습니까? 오늘은 그 ‘여우바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경주를 역사문화도시라고 말 하지요. 그러나 경주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지만 경주의 역사문화 하면 늘 불교문화 중심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사로국이 기원전 57년에 출범한 후 불교가 들어오기 전 600여년의 문화유산을 거론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초기 한민족을 주도한 주민과 그들의 의식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남긴 사로국에서 신라로 이어진 초기 문화유적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은 구전설화 한 토막과 암각화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접근을 해 보려고 합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여우바위’라니요. 왜 그런 전설이 전해지게 되었을까요?
네, ‘여우바위’는 사로국이 형성될 무렵의 암각화로 추정되는 그림이 새겨진 바위를 말하는데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 언젠가는 여우무당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문제는 가설에서 출발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 예요.

※여우요? 여우같다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 않나요? 그런데 여우무당이 있었다구요? 믿기지 않는데요?
네 그렇죠. 늙은 여우는 사람을 해치는 교활한 짐승이란 이미지가 있죠. 여성에게 ‘여우같다’라고 하기도 하는 데, 그 말에는 ‘사람을 잘 현혹시킨다는 의미가 있죠. 일반적으로 우리 의식 속에는 여우라 하면 사악하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죠.
요사스런 여우이야기는 『삼국사기』 고구려 차대왕이 사냥 가서 ‘흰여우’를 만난 이야기에도 나온다. 흰여우[白狐]가 뒤따라오면서 울자 왕이 쏘았지만 맞히지 못하였다. 이를 두고 무사(巫師)가 왕에게 아뢰기를, 힌 여우는 요사스러운 짐승으로 길하지 않은 상징인데, 더욱이 흰색인 것은 하늘이 간절히 하고 싶은 말을 요괴(妖怪)로서 내보인 것이니....

※진성여왕대의 거타지 설화 기억나나요? 『삼국유사』에 나오잖아요.
네, 늙은 여우가 승려로 둔갑하여 서해 해신(용왕) 가족들의 간을 빼어먹는 이야기 말이죠. 한번 들어볼까요. 진성여왕의 아들인 아찬 양패가 사람들을 이끌고 당나라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이때 거타지도 궁사로 뽑혀 함께 가게 되었다. 일행이 당나라로 가는 도중에 곡도라는 섬에서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양패가 점을 치게 하니 “섬안에 신령스런 연못이 하나 있는게 그곳에 제사를 지내면 풍랑이 멎을 것이다”라고 했다. 해서 일행은 그 연못에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자 못의 물이 높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날 밤 양패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 “활 잘 쏘는 궁사 한 명만 이 섬에 남겨두고 떠나면 순풍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제비뽑기를 했는데 거타지가 남게 되었다.

거타지 남아 있는데, 연못에서 한 노인이 나와 부탁한다. “나는 서해의 해신(海神)이다. 매일 한 중이 해 뜰 무렵이면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주문)를 외면서 이 못을 세 바퀴 돈다. 그러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은 물 위에 뜨게 된다. 이렇게 해 두고 그 중은 내 자손들의 간장을 빼먹어 왔다. 이제 내 자손들의 간장을 다 빼먹고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 남겨두고 있는데, 내일 아침에도 그 중이 올 것이다. 부탁하건대 그 중을 활로 쏘아 주오." 해서 거타지는 그 못 주변에 잠복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튿날,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자 과연 중이 내려왔다. 그 중은 전과 마찬가지로 주문을 외고 그 늙은 용의 간을 빼내려 했다. 그때 거타지는 활을 쏘았다. 화살은 명중되었다. 그 중은 늙은 여우로 변해 땅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살펴보면 여우가 중으로 둔갑하는 능력이 있음은 물론 해신까지 제압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여우가 한 때 섬김을 받았다고요?
네 여우는 원래 달 동물이었어요. 재생과 부활을 담당하는 달과 관련된 동물이었지요. 잘 아시는 구미호라는 여우가 있지요. 그 여우는 중국의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서왕모의 사자지요.

※ 어찌되었든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여우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의 주제인 ‘여우바위’를 통해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여우에 대한 생각을 알아볼까요?
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타고 경주를 막 지나면 오른 쪽으로 제법 넓은 들이 나타난다. 그 들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안심리 암각화가 있다.
1999년 답사 당시 마을 주민에게 이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가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대답이 참 낯설었다. 그 바위를 ‘여우바위’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 GBN 경북방송

그 주변에는 고인돌도 여러 기 널려 있다. 주민들은 이 마을을 광석마을이라 부른다.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를 ‘여시바위’라고도 부른다.

※여우바위라니 참 낮선 이름이네요? 그렇게 부른 데는 어떤 비밀이 있었을까요?
네, 그 바위를 여우바위라고 부르는 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과거의 정신문화의 한 편린이겠지요. 저는 그 연결고리를 황해도에서 채록된 구전설화에서 찾았다.

그 구전설화에는 단군과 기자의 탄생 이야기가 담겨있다. ‘옛날 밥나무에서 밥을 따 먹고 옷나무에서 옷을 따 입던 시절, 하늘에서 사람이 하나 떨어졌다. 한데 그의 남근이 예순 다섯 발은 될 정도로 길었다. 그래서 동물들이 모두 마다했는데 곰이 굴속에 있다가 그 남근을 맞이하여 단군을 낳았고, 그 후 여우가 받아서 箕子를 낳았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구전설화네요? 그 구전설화에 어떤 비밀이 담겨있습니까?
네, 저는 문헌으로 전달되지 않은 민족사의 비밀을 이 구전설화와 안심리 여우바위가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전설화를 단군신화와 연결하여 생각해볼까요.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곰이 결합하여 단군을 낳았고,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여우가 만나서 기자가 탄생했다’ 이런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이는 단군의 무리와 기자의 무리가 어느 정도 혈연적으로 연결되는 측면도 있지만, 두 집단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초기 민족사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발표한 책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에서 단군숙신과 고조선을 구별해서 이해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역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서가 되는 셈인가요?
네, 하늘사람(환웅)과 여우가 만나 기자를 낳았다는 단서를 통해서 우리는 기자조선이 요서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난하 동쪽에 있었던 고죽국(孤竹國)이 바로 여우를 토템으로 한 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 지역에서 기자일족의 것으로 보이는 ‘기후(箕侯)’라는 이름이 새겨진 청동유물도 발견되었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기자가 동쪽(고죽국)으로 왔을 때 단군세력들은 그 보다 더 동쪽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상고사를 이해할 때는 기자조선보다
교토 시 근방의 후시미신사를 지키고 있는 여우상(야마이누). 이 신사는 벼의 신 이나리를 모시는 일본의 4만여 개 신사 가운데 가장 큰 신사다. 여우는 이나리 신의 수호자이자 사자로 여겨진다.

먼저 동으로 이동한 세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는 그들이 진인(辰人)으로 후에 진국이나 숙신으로 나타나는 세력으로 봅니다. 그러한 역사적 정황에 대해서는 고려 말의 이승휴가 남긴 『제왕운기』에 잘 기술해 놓고 있습니다. 단군조선이 망하고 기자조선이 들어섰다고 말입니다.

※한민족의 성립과 이동사가 구전설화와 암각화에 남아 있었던 셈이네요?
아무튼 고죽국의 여우토템이 황해도 구전설화나 안심리 여우바위에 그 흔적을 남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고죽국은 여우를 사자(使者)로 하는 농업신을 토템으로 삼았었다. 이들 고죽국 사람들과 기자무리가 결합했던 사람들이 한반도로 들어왔고, 그들보다 먼저 들어왔던 단군조선의 후손들이 섞여 살면서 전한 이야기가 바로 황해도 구전설화일 것이다. 또한 뒤늦게 경상도 지역으로 들어왔던 조선의 무리 중 여우를 농업신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경주 안심리 암각화를 조각했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들 여우를 농업신의 토템으로 여기던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가 신사를 세운 것이 이나리신사일 것입니다.

※안심리 여우바위의 여우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신사를 지켰다구요?
네, 이들 안심리 암각화를 조성했던 일단의 무리가 일본으로 건너간 흔적이 바로 일본 전역에 퍼져 있는 이나리신사(古麓稻荷神社)이다. 이나리 신앙은 농업과 관계가 있고 여우가 상징 동물인데 일본 전역에 분포한다. 신사의 외부에는 이나리신사의 상징인 여우 조각 두 개가 입구를 지키고 있다. 제가 보기엔 여우토템의 이동흔적이다. 특히 신라계 도래인으로 일본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하타씨(秦氏)를 모시는 후시미이나리대사는 그를 농업신으로 모신 곳이다. 기자조선에 편입되었던 고죽국 주민의 일부가 황해도와 경주를 거쳐 일본으로 갔던 것이다.

ⓒ GBN 경북방송

역사는 흐른다. 특히 고대사는 흐름의 시각을 보아야 한다. 난하 하류와 대릉하 상류 지역에서 발생한 여우토템족의 일단이 조선의 이동과 함께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이다.
진병철 기자 / 5084474@hanmail.net입력 : 2015년 0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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