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시인이 만난 오늘의 시 - `노랑은 색이 아니에요` / 이장호 시인
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입력 : 2024년 03월 06일
노랑은 색이 아니에요
이장호
늙은 호박은 언제부터 늙어있었는지 날카로운 말을 찔러 넣어도 아프지 않은가 봐 비릿하며 달짝지근한 외로움은 어디에 숨겼을까 단단했던 침묵은 노랗게 짓물러지고 꼭지만 말라간다
늙으면 약해지고 상처를 잘 입을 텐데 조심해서는 껍질을 벗기기 어렵다 따끈한 눈물을 흘리고 나서야 훌훌 벗어지는 것들 그렇게 칼칼하게 단어를 사용했던 것은 어쩌면 뜨겁게 울어줄 무엇이 필요해서였는지 모른다
궁금한 안부에 퉁퉁하던 반응은 속을 갈라 보고야 알게 된다 씨앗들이 파먹고 남긴 것은 노오란 빈 공간 그 빈 곳을 숨기려고 껍질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나 보다
엄마는 노랗게 아팠다 지천이 은행잎으로 깔린 공원을 자주 걸었고 시집도 오기 전부터 고개 숙인 벼밭을 거두기도 했다 맑은 눈에 노란 물을 들이고 나서부터는 돌아누우며 뜨거운 음식을 멀리 두었다
차갑게 식은 죽을 데우고 있지만 나는 아직 어느 한 곳도 뜨거워지지 못하고 노오란 동굴만 파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가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아이를 기르고 가족을 부양하며 당신의 삶은 벌써 멀리까지 와버렸는데
노랑이 색으로 보이지 않고 다른 무엇으로 느껴지는 날이 많아집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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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22년 《창작21》으로 등단
시집 『노랑은 색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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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기자 / blue2140@hanmail.net 입력 : 2024년 03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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