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동자를 주고 갔다
정선희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 단풍이 든다 달마산 도솔암이 그랬고 지리산 상무주암이 그랬고 무등산 주상절리가 그랬다
다시 볼 수 있을까 해마다 보는 단풍인데, 그는 너무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울고 싶다고 했다 떨어지는 낙엽을 주워 담은 눈을 깜박일 때마다 붉은 물이 출렁거렸다
그가 눈동자를 내게 주고 간 눈동자 단풍이 들어 더 붉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단풍이, 구름의 한쪽 모서리가 접혔다
다시 볼 수 있을까
눈을 깜박일 때마다 공중을 가로질러 저 붉음은 든다
▶그를 생각하면 눈동자부터 떠오른다. 무슨 옷을 입었니? 하면 생각이 안 나는데 눈동자에 무엇이 담겼냐고 물으면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오래전부터 그림을 그리면 눈동자만 그리곤 했다. 눈동자는 옹달샘 같아. 그 속에 구름이 살고 물고기가 살고 새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처럼 눈동자 속에서 영혼이 스미어 나왔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눈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를 따라 산천 구경을 많이 다녔다.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풍경을 아프게 눈 속에 담았다. 노란 안경을 쓰면 세상이 노랗게 보이듯. 그의 눈동자를 통과한 풍경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다시 볼 수 있을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 눈동자에도 단풍이 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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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2년 『문학과의식』 신인상
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20회 모던포엠 문학상 수상 시집『푸른 빛이 걸어왔다』 『아직 자라지 않은 아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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