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약국은 한가해요
홍여니
너와 나의 유대감은 설화 속 감정 같은 것 이주선에서 내리자마자 배정된 각자의 큐브방은 자발적 고립형으로 설계되었다
함께이길 욕망하는 고독증후군은 흔하디흔한 증상으로 72시간마다 두 시간의 타인교섭권을 처방받는다 가벼운 대화와 식사를 나누는 표층교섭권이나 깊은 속내와 꿈을 어루만지는 심층교섭권 중 선택할 수 있다
때로 심층교섭을 반복하던 사람끼리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기 싫어해서 지구로 귀환 요청을 하는 커플이 생기기도 한다
희박한 산소로 인해 일시적 함구증이 오기도 하는데 이는 일종의 돌림병이며 특별한 처방전이 필요 없다 처음 겪는 사람만이 겁에 질려 약국을 찾아오지만 하루 이틀 말의 잠복기가 지나면 저절로 치유되는 증상이다
푸른 별을 두고 그리워하는 향수병이 뭐니 뭐니 해도 매출의 일등공신이다
투명한 유리병에 각 나라의 흙과 강물을 담은 특별세트는 진열할 틈 없이 팔려나간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만지작이던 보슬한 감촉이 살아나고 친구와 웃는 장면을 캡처한 폴라로이드 필름들이 물결을 따라 연속적으로 맴을 돈다
어젯밤 찾아온 함구증이 되레 반갑기도 하려니와 손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흙을 주무를수록 지구에서의 시간은 줌 아웃으로 물러나고 있다 철모르던 시절의 눈물도 별빛 너머로 흩어져 간다
▶육지도 아닌, 외딴섬도 아닌 아예 지구를 벗어난 우주 그 어디쯤 혼자여도 괜찮을 시간을 들여다본다.
말을 잃어도, 누군가와 소통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공간을 그려본다.
결국 그리움만 살아남는 큐브 안에서 보슬한 흙의 감촉이 유일한 대안이다.
|
|
|
ⓒ GBN 경북방송 |
|
▶약력
2023년 계간 《시로여는세상》 신인상 등단
|